Darkhan_Ulaanbaatar_2011_Mongol
'울지마 톤즈'의 故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살레시오회 소속으로 비슷한 시기에 선교 나와서 현재(2022년)까지 몽골에서 살고 있는 이호열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서 국경도시 다르항(Darkhan, Дархан)으로 향했다. 다르항은 러시아와 붙어 있는 국경도시고 쾌적한 날씨를 보이는 여름 세 달 정도 이외의 기간엔 최저 -30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곳이다. 출장 일정을 7월 말 ~ 8월 사이 2주간으로 잡은 이유다.
도착한 후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다르항까지 이동하는 동안 차창밖에 펼쳐지는 몽골의 광활한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고 말았다. 하늘도, 초원도, 편안한 선의 구릉도, 떼 지어 풀을 뜯는 동물들도 전부 화폭에 그대로 옮기고 싶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속 시원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채로 여독도 잊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를 높여가며 5시간을 넘게 달려 다르항에 도착했다.
다르항은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하지만 수도 울란바타르 정도가 유일한 대도시의 모습이고 나머지는 우리 시골 마을 분위기라고 한다. 다르항에 도착하니 방학을 이용해서 봉사하러 온 한국 청소년들과 이곳 청소년들이 한참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함께 친교도 하고 농장 일도 돕고 동네 청소도 하고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많이 익숙해졌는지 카메라가 따라가기 힘들게 신부님의 진두지휘에 따라 후딱후딱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한참 일이 진행되는 중에, 자신들이 해오던 방식을 고집하는 자존심 강한 몽골 아이들과 일의 효율성을 생각해서 새 방법을 주장하는 한국 아이들 사이에 대립이 생겼고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카메라를 뒤로 슬쩍 빼고 조심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신부님은 이런 것도 교육과 경험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자연스럽게 화해하도록 유도했다. 휴식 시간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투닥투닥거리다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억지로 갈등을 제지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결말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순수하고 이런 경험을 통해 한 뼘씩 성장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함께 땀을 흘리고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두나라 청소년들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부님과 몽골 친구들이 장을 보러 간다길래 따라나섰다. 제법 큰 규모의 중앙시장엔 없는 게 없었다. 역시 외국에 가면 재래시장에 꼭 들러봐야 한다.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막걸리 같은 '마유주(말젖으로 만든 술)'를 팔고 있었고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한 사발씩 주셨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고기만 먹는다고 한다.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후 때문에 채소를 키우는 것도 어려웠을 테고 추운 계절을 지내려면 몸속에 동물성 지방을 꾹꾹 채워야 하기 때문이리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 문제와 수익사업을 고민하던 신부님은 여름철에 작물을 재배하는 대형 농장을 개간했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채소를 대량으로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고기만 먹고살 수 있었나 궁금했다. 이 마유주가 몸속 콜레스테롤을 없애주는 비법이라고 한다. 오호라~ 꼬릿한 냄새를 꾹 참고 벌컥벌컥 마셨다. 냄새는 그래도 마실만했다. 끝 맛으로 치즈맛도 남고...
다음 날 다르항 돈보스코 센터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었다. 몽골 아이들이 봉사를 마치고 가는 한국 청소년들을 위해 몽골 전통음식들을 만들어 잔치를 벌여준다는 것이다. 그중 '호르허'라는 메인 요리를 만드는데 10여 명이 달려들어 반나절 동안 불 앞에서 땀을 흘렸다. 통속에 손질한 양고기와 불에 달군 돌을 번갈아 넣고 불 위에 두 시간 정도 두면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진지하고 익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해 보였다. 몽골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기 주도적이고 어른스러웠다. 그런 특성은 강한 자존심도 보이기에 조금이라도 무시한다고 느끼면 바로 싸우자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 모습이 오히려 좋아 보였다. 부족하더라도 당당한 삶의 자세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한국인 신부님과도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내며 깊이 정을 나누는 모습도 너무 보기 좋았다.
봉사를 마친 한국 청소년들이 귀국하기 전 1박 2일 일정으로 수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와 테를지(Gorkhi-Terelj National Park) 국립공원에 관광가는 일정에 함께 했다. 몽골 친구들도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써서 몇 명 같이 가기로 했다. 전날 밤 울고불고 이별의 정을 다 나눴는데...ㅎㅎ 그렇게 신나는 여행을 떠났다.
테를지 공원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를 체험하고 말을 타며 자연 속에서 캠핑하듯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이들도 현대식 집을 짓고 살지만 유목민 시절 동물들과 함께 이동하기 위해 '게르'를 가지고 다니며 살았다. 안에 들어가면 보기보다 넓고 쾌적하다. 삐지거나 싸운 후 따로 숨을 공간이 없는 원형 원룸 형태로 가족 공동체를 강화하기엔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불편하긴 했지만 자연의 상쾌함이 가득한 숲 속에서 여유로운 이틀을 보낸 후 한국 봉사단을 귀국시키고 다시 다르항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본격적으로 신부님의 일상을 담고 난 후, 떠날 때가 되어 신부님이 소풍을 제안하셨다. 그렇게 하루 시간을 내서 주민 몇 분과 내몽골 방향 오지로 소풍을 갔다. 음식을 싸들고 아무것도 없는 태초의 자연을 찾아 머무는 것이 소풍이었다. 어두워진 후 자리를 깔고 누워 쏟아지는 별을 한참 감상하며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밤하늘과 별이 연출하는 숨 막히는 풍경에 푹 빠져서 자연 속에 스며든 나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주 정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몽골은, 몽골 사람들은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세계에서 가장 초원 같은 초원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함께 살고 있다. 맑고 짙으며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하늘과 순수하나 자존감 강한 사람들, 세계를 지배하기도 했던 버라이어티한 역사, 그리고 인종적인 친근함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차별되는 느낌과 재미를 주는 곳이다. 꼭 다시 오고 싶어졌다.
글을 쓰기 위해 정리하며 다시 보니, 함께 해 준 사람들 모두 너무 그립다.
모두 여전히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