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F_Oaxaca_Mexico_2005
2005년 6월 13일 케냐 나이로비 공항을 떠나 14일 인천에 도착한 후, 촬영 데이터를 백업하고 짐을 정비해서 6월 15일, 프로젝트의 세 번째 일정을 떠났다. 인천-밴쿠버-멕시코시티의 여정이었다.
3일 동안 40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다리는 ㄱ 자로 고정된 듯했고,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도와주는 분들 스케줄에 맞춰야 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위험천만한 일정이었다.
연착과 취소 없이 연결되어 일정을 소화한 것도, 무리한 여정에 쓰러지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었다.
멕시코시티 인근 찰코(Chalco)에 있는 '소녀의 집(Villa de las Ninas)'에 도착했다.
공항엔 첫인상이 아주 선하고 편한 김남경 데레사 수녀님이 마중 나오셨다.
안도의 한숨~
낯선 곳, 낯선 만남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쯤 없어지려나...
공항에서 귀찮은 절차 없이 통과한 후, 숙소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새로 만난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서야 곤두서 있던 모든 신경이 안정된다.
그리곤 이제부턴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를 파악하는데 새롭게 더듬이를 곧추세운다.
뇌의 모든 기능이 가동되어 삐걱거리는 버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순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마음은 쉴 새 없이 복닥거리는 나의 소심함과 마주하게 된다.
이내 푹 꺼지는 자존감...
여하튼 너무 곤두세우지 않고 생애 처음 방문한 중남미에서의 여정을 신나게 즐기며 보내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늘은 6.15 선언이 있었던 날이고 철민이 형 기일이다.
전 세계 가톨릭 문화를 만나보는 ‘믿음의 노래’.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13부작 욕심을 내다보니 일정은 빡빡하고 예산은 빠듯했다. 저렴한 항공료를 알아보고 현지 가이드와 코디, 통역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염치없지만 세계 곳곳에 파견되어 살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을 알음알음으로 찾았다. 보통 빈민가나 오지, 복지시설에서 정신없이 사는 분들이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셨고 직접 찾았으면 만나기 힘든 삶의 모습들을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그중 멕시코는 도와줄 분을 찾는 게 제일 어려웠다. 워낙 넓은 나라이고 동쪽 끝 카리브해 연안에서 원주민 사목 하는 신부님들, 남부의 밀림 속에 사는 수녀님들, 북부의 사막에 계신 또 다른 수녀님들... 은 우리를 도와줄 상황이 되지 못했다.
한국에서 노심초사하며 여기저기 연락을 드리던 끝에, 첫 출장지였던 필리핀으로 출발하기 직전, 멕시코 찰코와 과달라하라에서 소녀의 집, 소년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마리아수녀회의 한 수녀님에게서 무심한 내용의 손글씨 메모가 팩스로 한 장 들어왔다.
‘...(전략)... 일단 와보세요’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항공편과 도착시간을 팩스로 알려드리고 필리핀, 우간다, 케냐를 거쳐 한 달 만에 멕시코시티 공항에 내렸다. 마중 나온 수녀님의 인상을 일기에 중요하게 남긴 이유다.
숙소이자 베이스캠프인 찰코 소녀의 집에 도착해서 다시 긴장한 마음으로 팩스를 보내준 원장 정말지 수녀님을 만나러 갔다. 온화한 미소에 팩스 메모의 건조함은 낯가림이었다는 걸 이내 알게 됐다. 그리고 수녀님은 우리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다 끝내고 완벽에 가까운 일정과 방문지를 이미 세팅해 놓으셨다. 감동이었고 대단한 능력자이심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일주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숙식, 학교 차량과 기사로 간 장거리 촬영, 통역과 코디... 비용엔 턱도 없지만 1,000달러를 부끄러이 드리며 건낸 '이 은혜 평생 갚겠다'는 말에 ‘안 잊을게요~’라고 했던 수녀님의 답변으로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마리아수녀회, 소년의 집, 꿈나무마을과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의 기원이다.
첫날 수녀님들이 차려준 맛있는 한식을 먹고 여독을 푼 후에 다음 날부터 ‘완벽한’ 일정에 따라 촬영을 시작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푸에블라(Puebla)와 촐룰라(Cholula), 수도 멕시코시티(DF), 너무나도 유명한 과달루페(Guadalupe) 성지 등을 방문했다. 해발 2,000m가 넘는 푸에블라를 다니던 중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고산병 증세란다. 다음 일정인 페루의 쿠스코 지역이 해발 3,400m라고 해서 그곳만 걱정했는데 여기서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었다.
멋진 성당과 유적들, 신나게 담아야 할 상황에 체력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다녔다. 원주민들의 신전이 모여있던 곳에 그 신들과 연관 있는 주보성인을 모신 성당을 365개 지어놓았다는 산 안드레스 촐룰라(San Andres Cholula). 중남미 일정 내내 머리를 맴돌았던, 정복자에게 강요된 종교라는 문제의식과 바로 연관되는 역사지만 풍경과 특이한 문화만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많은 성당마다 주보성인 축제를 벌여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워낙 성당들이 가까이 붙어있다 보니 이번 주는 오른쪽 성당 축제, 다음 주는 왼쪽 성당 축제에 참여하는 등 주민들은 모두 축제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단다.
며칠이 지나 후아우틀라를 다녀온 후 촐룰라를 다시 방문해서 성안드레아 성당 축제에 함께 했다. 화려한 장식과 저녁 내내 끊이지 않는 불꽃놀이, 주민들과 관광객이 모두 함께 참여한 미사와 행사가 인상 깊었다. 특히 성당 바닥에 장식한 문양은 색색으로 물들인 곡식으로 만든 것이었고 그 정교함에 감탄했다. 입당 시 사제단이 밟고 지나가는데, 그 오랜 작업이 그렇게 허무하게 흩어지는 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함께 힘모은 정성을 그렇게 봉헌하는 것이라니 끄덕여지고 참 쿨하다고 생각했다.
* 우리나라의 감곡성당 등에서도 축제 때 이런 작업을 한다.
지친 몸을 깨운 건 의외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풍요로운 유적과 문화를 영상에 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기대 없이 따라간 식당. 멕시코 전통음식을 파는 곳이었고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투박한 타코가 나왔고 주린 배를 채우려 일단 먹으려는 순간. 식당 주인과 수녀님이 제지하며 녹색 액체인 칠리소스를 넣어 먹어야 한단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수저 뿌려서 한입 베어 물자... 온몸의 구멍이 다 열리고 입은 불타오르며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벌칙 음식 먹인 것 마냥 깔깔대는 일행들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식당 전체를 돌아다니며 항진된 몸을 가라앉혀야 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신기하게도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고 음식들을 다시 즐기며 원기가 회복되었다. 맵찔이인 나는 이때 처음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매운 걸 먹는 나라는 멕시코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상 어디나 같은 걸 추구하고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삶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굳이 다른 것을 발견하려 애쓰고 작은 차이를 강조하는 건, 자신의 경험을, 발견을 치장하고 극대화해서 다른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욕구가 앞서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 하는 작업도 그런 욕구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은가?
굳이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다름을 놀라움으로 강조하고 있진 않았나?
있는 그대로를 보고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프로그램을 통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있음을 발견하려는 의도를 상기하면서...
이제 짧은 시간에 무언가 색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담을 건 많고 시간은 부족한 상황에서 다양한 스케줄에 따라다니다 보니 방향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날 이후의 일정이 훨씬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적절한 정리였던 것 같다.
멕시코 중앙 산악 지역에 위치한 오하까주. 그중 산맥 위에 자리 잡고 마사떼꼬족이 주를 이루는 후아우틀라 데 히메네스(Huautla de Jimenez)라는 곳을 방문했다. 토착화된 가톨릭 문화를 만나고 싶어 했던 요청에 말지 수녀님이 수소문을 해서 전통적인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을 찾아놓으셨다. 그리고 수녀님이 직접 학교 승합차를 대동해서 먼 여행에 동행해주셨다. 너무 바쁜 일정 중에 당신도 쉴 겸 여행 겸 가시겠다고... 물론 내내 통역하느라 코디해주시느라 못 쉬셨지만...
가는 길은 멀고 험했고, 창밖에 보이는 독특한 선인장들로 이곳이 멕시코구나 싶었다.
새벽에 출발해서 6시간 걸려 아주 '높은' 산악에 위치한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쾌적하고 서늘한 날씨 덕에 여행의 피로가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주교관에 도착하고 일단 점심을 먹자하여 들어간 식당. 주교님은 안계신지 눈치를 보며 뻘쭘하게 있는 우리에게 식사를 차리던 아저씨가 먼저 밥을 먹으라고 권한다. 모두 음식을 담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려는 순간.
그 아저씨가, 자그마한 체구에 허름한 셔츠와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던 그 아저씨가...
본인 음식을 가지고 우리 옆에 앉더니, 당신이 이곳의 교구장 주교란다.
모두 허억~!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먹자는 시골 노인에게 급 친근감이 들고 존경심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진정한 섬김을 하고 사시는 주교님의 모습에 감동 반 당황 반.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른 문화겠지만 격식이, 예의가, 의전이 권위를 만들어 주는 건 아니구나... 낮추는 모습이 높아 보이게 하는 거구나... 란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유쾌한 점심식사 시간을 보냈다.
마치 백두대간을 종주하듯 산맥 위를 달리고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6시간에 걸쳐 찾아 들어온 곳.
DF나 푸에블라도 쾌적한데 도대체 이 높은 곳에 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함은 꾹 삼켰다.
뭘 자꾸 분석하려는 성격이 너무 많은 정보의 늪에 빠져버리게 하기 때문에...
참 신기한 건 나라마다 준비해주는 분들이나 상황이 다 다른데 정작 촬영을 해보면 하나의 일관된 구성을 가진 양, 유사한 내용들이 담긴다는 걸 느낀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참 감사하고 보람된 시간들이다.
메히코(Mexico)가 참 마음에 든다.
사람들, 삶의 모습들... 우리와 무척 닮아있음에 친근감이 들고 착한 사람들의 미소가 기분 좋아지게 하는 곳이다.
성당 주임 신부님의 도움으로 산속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자연 속에 살며 단순하고 명확한 이들의 삶과 신앙에 머리 숙이게 되었다. 존재감은 다양한 성취를 통해 이뤄지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본당 미사 순서 중 앞쪽 참회 예절을 30분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자석 앞에 화로를 피워놓고 다들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휘저으며 하얀 연기를 서로에게 뿌려준다. 본격적인 미사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씻어주는 예식이라고 한다. 그것도 돌아가며 아주 꼼꼼하게...
이 예식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마사떼꼬족이 해오던 참회식이고 미사에 녹여내어 전통을 유지하면서 의미를 연결시켜 진심으로 미사에 참여하게 하는 토착화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정성 들여 참회하는 사람들은 선하게 살지 않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지의 삶을 만나면서 라틴 아메리카는 문화적으로, 인간적으로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주교,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발견했고 가슴이 벅차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제는 Huautla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 나 고속도로 위에서 4시간 동안 서있었다.
일정 내내 피곤했을 텐데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은 말지 수녀님, 주영, 준희, 가브리엘...
우리 일 때문에 모두 너무 고생들이어서 많이 미안했다.
새벽 4시에 숙소에 도착했고 오늘 오후엔 촐룰라에 다시 가서 축제 촬영을 하고 또 자정이 넘어 들어왔다.
기쁘게 함께 해 준 모든 분들에게 참 감사하다.
情이 들어간다는 건 참 가슴 벅찬 일이기도 하지만 상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두려워 정드는 것을 피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미리 당겨 느껴지는 상실감에 울적해진다.
내일, 또다시 정든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며 추억을 만든 소중한 만남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서 가져가야겠다.
그리고 또 새로운 정들기를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