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en_Nairobi_Kenya_2005
Karibu~ (Welcome)
연신 외치시는 스와힐리어 인사에 며칠 동안 익힌 대답을 해본다.
Asante sana~ (Thank you very much)
한국인 수녀님들이 오래전 파견되어 살고 있는 나이로비 외곽 카렌의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도착했다.
국제 공동체여서 여러 나라 출신의 수녀님들이 우리를 반긴다.
안내받은 수녀원 안 숙소 수비아꼬(Subiaco) 센터.
우간다 진자, 케냐의 체송고치의 숙소에 비하면 오성급 호텔이다.
게다가 나이로비는 해발 1,600m에 위치한 도시여서 우리의 가을 같은 쾌적한 기후를 선사한다.
쾌적한 날씨, 고품격 숙소...
한 가지, 늦잠이 불가하다는 문제가... ㅎㅎ
새벽 5시 30분 수녀원 성당의 미사에 참여한다.
(뭐 강요받은 건 아니지만 ‘한국 애들은 왜 저래? 놀러 왔어?’란 소릴 들으면 안 되니까!)
카렌은 나이로비 외곽에 위치한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유명한 'Out of Africa'를 쓴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카렌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커피농장을 하며 살았고 덴마크로 돌아간 후 케냐에서의 삶을 작품으로 남겼다.
살았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카렌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삼일 동안 부지런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고...
(촬영할 땐 사진을 남길 틈이 없어서 증명이 안되지만...ㅎㅎ 구차한가? ㅋ)
일정 중, 아프리카가 좀 익숙해졌다고 우리끼리 공힐(Ngong Hill)이라는 높은 언덕에 올라서 일몰 촬영하다가 마사이족에게 큰일을 당할 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멀리 주차해놓은 차에서 기다리던 현지인 기사가 헐레벌떡 정상까지 달려와서 설명도 없이 우리를 무작정 끌고 달렸다.
영문도 모르고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따라 뛰고 헉헉거리며 차에 타서 들은 설명은...
해가 지면 죽는단다.
체송고치에서도 우리가 방문하기 두 주 전 영국 청년이 혼자 지프차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하던 중 실종됐다는 소리도 들었고, 이곳 공힐 주변에서 사목 하던 유럽인 신부님이 얼마 전 강도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말도 들었는데...
우리하곤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해 질 녘 쏜살같이 언덕을 내려오며 창밖으로 마주치던 하얀 눈동자와 번뜩이던 장검...
지금 생각해도 심장과 손이 떨린다.
숙소에 돌아와 무용담처럼 늘어놓다가 수녀님들께 혼 좀 나고...
다음 날 아침, 숨도 돌리고 풍경도 담기 위해서 나이로비 인근의 아프리카다운 자연을 찾아 나섰다.
오며 가며 보던 넓은 초원과 사람들로 아프리카에 있음을 느끼곤 했지만,
TV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이로비 외곽 National Park에서 만났다.
넓은 초원 속 야생 동물들의 풍경은 이렇게 만들어진 대규모 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
'맹수들이 민가를 습격하니까 일정 지역에 서식하도록 관리하는 거군요~'하고 아는 척을 했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하도 동물들을 잡아먹어서 국립공원을 만들어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
이곳은 도시 인근의 비교적 소규모 공원이지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넓은 초원 지역이다.
멀리 소실점을 향해 달리는 사파리카가 일으키는 먼지와 자연 상태의 유유자적한 생명체들의 모습이 우리가 아프리카에 있음을 완전 실감하게 했다.
계절이 맞지 않아서 다양한 녀석들, 특히 사파리 Big 5(사자, 표범, 코끼리, 버펄로, 코뿔소)를 다 볼 순 없었지만 급하게나마 이런 풍경을 영상에 담는 걸로 만족하고 다음엔 세렝게티(케냐 쪽 구역은 '마사이마라')에 반드시 오리라 마음먹으며 짧은 야생 투어를 마쳤다.
많은 동물을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쉬우셨는지, 우리를 동물원 같은 곳에 데리고 가주셨다.
자료 화면 확보는 충분했는데... 그 지극한 배려심에 암말 안 하고 어린이날을 맞이한 아이처럼 따라나섰다.
이렇게 2주간의 아프리카 첫 여행은, 공항에서의 황당함과 살벌한 첫 숙소로 시작했으나 마무리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본인들의 바쁜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가이드에, 코디에, 보호자에, 먹이고 재우는 것까지 친동생처럼 정성을 다해 챙겨주신 신셀바, 고마리아, 박파스카 수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5. 06. 11. 일기]
해가 넘어가기 전, 나무들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피정센터 넓은 정원은 너무 아늑하고 아름답다.
이런 멋진 곳을 떠나려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노동의 고단함과는 별개로...
백 년 이상 자란 듯한 높은 나무들, 포근한 색의 기와가 인상적인 건물들, 기분 좋은 주파수로 지저귀는 새소리, 예쁜 원색의 꽃들이 상큼한 내음의 푸른 잔디와 더불어 모든 것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Subiaco는 말 그대로 Retreat Centre다.
내일 Ruaraka 미사를 촬영하는 것으로 아프리카에서의 일정이 끝난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출발했던 며칠 전을 생각하면 역시 경험이 불안을 치유한다는 걸 깨닫는다.
일을 하느라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바라보지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기억과 감상들이 내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인연들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