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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on easy Aug 07. 2021

리마_삶의 다양한 얼굴

Lima_Peru_2005

오래된 新도시 리마


남미는 대륙 서편에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왼쪽 태평양 연안은 사막, 오른쪽 내륙은 밀림으로 구분된다. 동쪽에서 오는 구름이 안데스 산맥에 걸린 채 비를 뿌린 곳엔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밀림이 형성되고 비가 오지 않는 서쪽 해안은 사막 기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밀림에서도 사막에서도 살기 힘들어 쿠스코 같은 고산지에 적응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고, 많은 자연의 위협에도 먹을 것이 풍부한 밀림에 적응하며 사는 부족들도 있다.

태평양 연안의 사막에는 누구도 살 수 없었다. 리마 남쪽 지역 나스카의 문양을 외계인의 표식이라 생각하는 이유도 그곳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곳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도시를 만들고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는 고산지에서도, 더위와 온갖 해충이나 동물의 위협이 도사리는 밀림에서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도시가 리마(Lima)고, 그 덕분에 지금도 안데스 고산지와 내륙의 밀림에선 원형 그대로의 원주민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태평양 연안 도시, 페루의 수도 리마(Lima)

해안가 절벽 위에 멋지게 자리 잡은 리마.

스페인이 남미 식민지 전체를 관리하던 중심지였기에 유럽풍의 아름다운 유적과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전통을 간직한 구시가지 센트로(Centro)와 깨끗하게 개발된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Mira Flores)가 있고 많은 항공편이 연결되는 곳이어서 남미 여행의 출발지이자 거점이 되는 곳이다.


시선을 조금 돌려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푸석푸석한 땅 위에 옹기종기 형성된 빈민가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어디나 있는 대도시 주변의 슬럼이지만 리마의 그것은 왠지 좀 더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2005. 6. 25. 일기]

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리마로 돌아와 골롬반 본부에 짐을 풀었다.
오늘 늦은 밤부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일정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는 조금 여유도 생겼고 정리도 해가면서 촬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도도 하면서 일정에 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리마의 변두리 풍경에 우울한 기분이 든다.
을씨년스러운 거리와 집들... 겁나는 흉흉한 이야기들...
환경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다가 현실의 각박한 삶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앉아있다.
그리고 누굴 향해있는지도 모를 아픈 말들이 마음을 짓누른다.
한국과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이런 모든 것이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익숙한 것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시려는...




절도와 기도


빈민가 집의 큰 창을 열어두고 안쪽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불과 4~5m 정도의 거리, 그들은 창 너머에서 우리가 타고 온 차의 유리를 깨고 카오디오를 뜯었다.

차의 비상벨이 크게 울렸고 마치 자기 것을 챙겨가는 듯, 후다닥 나간 우리에게 당당한 미소를 남기며 오토바이 2인조 강도는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온몸이 송연해진다. 미안해하는 주인 부부와 침울해진 촬영 분위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죄의식 없이 타인의 물건을 훔쳐 살아가는 그 녀석들과 식사대접까지 정성스레 하고 본인들의 잘못이 아닌 일에 몸 둘 바 몰라하는 부부, 이런 환경에서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신부님들...

그리고 지금 충격에서 겨우 벗어나 세상은 훨씬 어렵고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단 걸 배우고 있는 나를 위해서...

리마 외곽 전경

며칠간 리마의 다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후 처음의 바삭한 마음이 조금씩 촉촉해져 갔다.

화려한 미라플로레스를 방문한 후엔 빈부의 더 큰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를 위하고 밝게 살아가며 낯선 이방인을 경계 없이 마음으로 안아주었던 사람들 덕이다.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과 이웃들...

모든 삶은 '정돈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순간순간을 어떻게 충실히 살아내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순간의 앞가림을 위해 경계하고 화를 내고 혐오하고 훔치고 싸우지만 세상을 향한 위장막이 한 꺼풀 벗겨지면 애초에 신이 심어놓은 순박하고 선한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이천 년 동안 특별히 더 강조되어왔던 ‘사랑’은 그 껍질을 벗겨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리라.


[2005. 6. 29. 일기]

참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곳, 페루.
여러 곳에서 많은 현지인들을 만났기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아주 가난한 시골 가정, 도시 빈민가, 상류층의 호화 주택... 다양한 집에서 식사 대접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한결 같이 반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모습에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치안문제, 무질서, 리마의 탁한 공기, 삭막한 풍경 등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쿠스코에서 좀 더 머물길 바라기도 했었다.
내일이면 페루를 떠나야 하는 지금, 풍요롭지 않지만 성실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가깝게 만나면서 여행의 참 맛을 조금이나마 본 것 같다.
오래 남을 것 같은 기억, 사람들 Peruanos.
6월 29일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 행사. 이날을 맞춰 성 베드로와 바오로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본당을 찾았다.
마을 주민 모두 하루 종일 퍼레이드와 공연을 하고 음식을 나누며 축제를 즐겼다


드디어 꾸이를...


리마 외곽 산동네에 자리 잡은 성 베드로,바오로 성당(Parroquia San Pedro y San Pablo)은 안동교구 소속 박재식 신부님이 본당 신부로 파견되어 있는 곳이다.

축일 행사 촬영을 하고 나서 신부님과 함께 신자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왁자지껄 유쾌한 가족들의 환대가 있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페루 음식 세비체(ceviche)를 전채로 먹은 후 나온 메인 요리.

돈가스 백반 같은 모습에 반가워서 신나게 먹다가 갈비뼈가 드러나길래 '닭고기예요?' 하고 물었다.

꾸이(Cuy)... 란다.

페루 일정 내내 피해왔던 녀석.

쿠스코의 인티라이미 행사장에서 툭 튀어나온 앞니를 드러낸 머리와 날카로운 발가락 다리 모양을 그대로 통째로 튀겨서 쌓아놓고 팔던, 모습은 그냥 쥐 튀김이어서 여러 사람의 권유에도 피해왔던...

학명은 기니피그(guinea pig)이지만 쥐 쪽 집안 출신인 아이다.

감자, 옥수수를 주로 먹던 고산지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키워 잡아먹던, 귀한 음식... 인건 알겠는데 지금은 먹을게 많은데 굳이 왜...

그런데 저렇게 팔다리, 머리를 잘라 튀겨 날 속일 줄이야… 결국 다 먹긴 했다. 이분들의 미소 앞에 무장해제당한 채로.

이후 페루를 여러 번 다시 갔지만 꾸이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꾸이(Cuy) 요리
온 가족이 정성스레 준비하고 함께 해준 환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페루의 모습이다.

[2005. 6. 30. 일기] 

다시 짐을 싼다. 갈수록 짐가방이 커져간다.
짐의 부피가 느는 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아지는가?
그야말로 '짐'만 무겁게 지고 가는 건 아닌가?

새로운 나라로 중남미의 마지막 일정을 떠난다.
스텝은 힘겨워하고 머리는 삐걱거리고 그리운 사람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빡빡한 일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거지만 투정도 부리고 약한 척도 하고 싶은데...
그럴 대상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다.
웃는 얼굴로 공항으로 가자.
목적지가 무려 브라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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