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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on easy Aug 22. 2021

따봉(Está bom) 브라질

Rio_Petropolis_Salvador_SP_Brasil_2005

매체를 통해서나 주워들은 이야기로 브라질 사람들은 열정적이지만 다혈질이며 텐션이 항상 높게 유지되는, 나에겐 좀 부담스러운 이미지였다. 유쾌하지만 왠지 기빨리고 벅찰 것 같은...

하지만 처음으로 브라질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직접 만나보고 경험한 그들은 너무나 따뜻하고 타인을 향해 마음이 열려있으며 항상 밝은 사람들이었다. 인간 본연의 감정과 단순함에 집중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부러운 삶의 모습... 그렇게 난 브라질(Brasil)을, 브라질레이호(Brasileiro)를 사랑하게 됐다.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해서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 고속버스를 타고 히우(히우 지 자네이루, Rio de Janeiro)로 향했다. 2층 버스의 침대처럼 누울 수 있는 1층 자리에서 꼬박 6시간 동안 잠도 자고 승무원이 주는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면서 비행기의 이코노미석보다 편하게 발 쭉 뻗고 밤샘 이동을 했다. 브라질은 국토가 넓으니 이런 교통편도 있구나... 싶었는데, 다녀보니 남미 전역에 Cama(침대라는 뜻), Semi-Cama 같은 등급의 장거리 버스 서비스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배낭 여행객들에겐 좀 피곤해도 숙박비와 교통비, 시간을 한 번에 절약할 수 있는 좋은 운송수단이다.


브라질에서는 여러 도시를 짧게 방문하는 일정이었고 도시마다 우리를 안내해줄 현지인 수도자들과 가이드가 섭외되어 있었다. 히우에는 인상이 너무 좋은 브라질인 아드리아나 수녀님이 마중을 나오셨고 내내 마치 기도하듯 사분사분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덕분에 말은 잘 안 통해도 편하게 촬영을 다닐 수 있었는데 다녀보니 브라질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다. 비행기가 딜레이 돼도 차가 막혀도 급할 거 없이 여유 있게... 일정으로 시간을 꽉꽉 채운 우리만 속 타고 그냥...

Rio de Janeiro 전경. 중앙 상단에 솟은 산이 빵산(Pão de Açúcar)이다.
브라질의 상징. 코르코바도(Corcovado) 산 위의  크리스토상(Cristo Redentor)
아드리아나 수녀님과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 상징물 등... 촬영을 급히 끝내고 사진을 남기기에 바빴다. 코르코바도산에서 내려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빵산(Pão de Açúcar)에 올라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경관을 즐겼다. 벤치에 눌러앉아서 멀리 코르코바도산과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 등 Rio의 다양한 모습들, 그림 같은 석양을 가슴에 담다가 어둑해질 무렵 빵산을 내려왔다.

빵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페트로폴리스(Petrópolis)


Rio에서 더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밤길을 달려 페트로폴리스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다음 날 이곳에서 열리는 큰 축제를 담기 위해서였다.


[2005. 7. 2. 일기]

브라질에 온 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벌써 세 번째 도시를 방문했다.
페트로폴리스, 첫인상이 고풍스럽고 푸근한 느낌이다. 옛날 왕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오후에 Rio 시내를 짧고 굵게 둘러보았다. 반나절에 그곳을 느낀다는 건 불가능했다.
관광을 온건 아니지만... 떠나면서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I'll be back!"

페트로폴리스 신학교에 짐을 풀었다.
수도원 같은 경건함에 압도당하고 있었는데 내일 모임에 참가할 젊은이들이 단체로 몰려드는 통에 시끌벅적, 유스호스텔이 되어버렸다.
처음 보는 우리에게 친구처럼 인사하는 이들의 밝고 격의 없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를 자기들 나이 정도로 생각해주는 것도 참 기특했다.
내일 같이 젊음을 만끽해봐야지~
페트로폴리스 로사리오성모성당(Igreja Nossa Senhora do Rosário)
숙소였던 페트로폴리스 신학교

유서 깊은 도시 페트로폴리스에서 열리는 아도라이(Adorai)라는 행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중 신앙집회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루 종일 축제처럼 즐기는 행사인데 종교적인 모임에 장년, 노년층 뿐 아니라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본고장 유럽의 가톨릭을 생각하면 이곳의 그것은 살아 숨 쉬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들은 이야기로 브라질에선 유명 CCM 가수들이 음반을 내면 100만 장은 거뜬히 팔린다고 하니 인구와 가톨릭 신자 비율을 감안한다 해도 신앙의 열기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대중선교'라는 방식으로 예술과 미디어, 대중문화를 매개로 신앙을 토착화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까이 본 이들은 단지 신앙에 매몰된 광신도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약속된 내세를 위해서거나 고단한 현실을 잊기 위해 신앙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빈부격차와 마약, 술,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사랑’을 살아내기 위해 신앙으로 힘을 얻고 이웃과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도라이 행사

깐사옹 노바(Canção Nova), 아파레시다(Aparecida)


아도라이에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온 가이드 아스트로마를 통해 유명 CCM 가수 둥가의 공연팀을 가깝게 취재하게 되었다. 원래 페트로폴리스에서 하룻밤을 더 자기로 했었는데 둥가의 제안으로 행사 후 바로 예정에 없던 깐사옹노바(Canção Nova)를 방문했다. 깐사옹노바는 동네 이름이기도 하고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이기도 하며 TV, Radio, 공연 사업 등을 하는 큰 규모의 방송국 이름이기도 하다. 브라질에 가톨릭 TV 방송만 100여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방송국이 깐사옹노바다. 이 동네에 사는 800명의 주민들이 다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고 그중 300명은 서원자로 평신도 공동체와 일을 병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방송국의 운영방식, 공동체적인 삶 등에 엄청 고무되어 나에게, 우리에게 투영해보며 꿈을 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를 연상시키기도 한 이 매력적인 마을에 오래도록 머물며 나를 깊게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아파레시다 성지. 어마어마한 성당 규모에 놀랐고 그와 대비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아파레시다 성모상에 또 한 번 놀랐다. 성상 모습이나 성지의 규모보다 기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삶이 무엇을 향하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곳이다. 이때는 잠시 촬영을 위해 스쳐 지났던 아파레시다. 그 아쉬움을 묻어두었다가 10년 후 다시 방문해서 구석구석 순례할 기회를 갖게 되기도 했다.

깐사옹노바의 게스트하우스
아파레시다 성지
성당(左)과 아파레시다 성모상(右)

프루덴찌(Presidente Prudente)


히우, 페트로폴리스, 깐사옹노바, 아파레시다, 프루덴찌, 살바도르, 상파울루를 거치는 여행 일정을 짜주고 현지 가이드들을 곳곳에 마련해주신 분은, 브라질에 귀화해서 수도자로 살고 있는 한국인 방사베리아 수녀님이다. 드디어 수녀님이 살고 계신 프루덴찌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렸다. 오랜 시간 일정과 촬영 계획을 이메일을 통해 나눈 터라 무척 친근한 느낌이었지만 실물은 처음 뵈었다. 역시 너무 푸근하고 친절한 분이셨고 무척 소녀다운 순수함을 가지고 계셨다. 참 인복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무작위로 연락드리고 설득하고 진행한 일들이어서 냉정함, 성가셔함 등은 각오했었는데 가는 곳마다 너무 따뜻하고 맞아주고 완벽하게 조율해주셔서... 하루하루 적절하게 마련된 시간을 보내면서 뭐 기적이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정옥 사베리아 수녀님과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이곳에서 내 운명의 음식, 슈하스코(Churrasco)를 만나게 된다. 수녀님이 교장으로 계신 학교의 선생님들이 총출동, 학교 뒤편 화덕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 직접 만들어준 슈하스코. 이 완벽한 음식과 식사 방식은 고기를 사랑하는 나를 흥분시켰다. 이후 브라질을 갈 때마다 슈하스카리아(Churrascaria, 슈하스코 음식점)만 찾았고 우리나라에 전문점이 새로 생길 때마다 꼭 방문하게 되었다.

슈하스코 요리

[2021. 7. 5. 일기]

아빠레시다에서 촬영을 마친 후 10시간을 달려 새벽 5시에 사베리아 수녀님이 계신 Prudente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 후 이 도시의 일간지 기자인 줄리아나의 취재가 있었다.
멀리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가톨릭 문화를 취재하러 온 것이 기사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깐사옹노바에서도 라디오 생방송을 견학하다가 갑자기 스튜디오에 끌려들어가서 출연을 하게 된 경험이 있었다.
이들에겐 우리가 취재 대상이었다. 우리 취재 일정도 빡빡한데... ㅋ
이것저것 흥미를 가지고 하는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내가 이곳에 왜 와있는지를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출장 후반부로 올수록 일정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느낌이었는데, 이 인터뷰가 나의 일을 다시 잘 정리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적절한 시점에 이렇게 배려받는구나...
기자 줄리아나, 페트로폴리스부터 통역을 도와준 이지은(마리아)와 함께

프루덴찌 인근의 아시스(Assis) 지역을 취재하면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가이드를 맡아준 아스트로마를 통해 브라질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인 마약과 알코올 중독을 퇴치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가 하고 있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브라질 축구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했던 아스트로마가 사회운동과 신앙 강사로 전향하게 된 계기도 사랑하는 조카가 2003년 마약전쟁 중 희생된 사건 때문이란 이야기도 이때 듣게 되었다. 엄청난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많은 이들이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가톨릭 교회와 꾸준히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아프레브(Aprev)란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Mais Amor, Menos Dor(더 많은 사랑, 더 적은 아픔)’라는 구호로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가족과 이웃, 교회가 느꼈을 아픔과 사명감에 공감하며 아스트로마가 이끄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재활시설도 방문하면서 ‘손 잡아줌’, ‘함께 있어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시스(Assis)에서 만난 개구장이들과 함께
브라질 가톨릭 문화를 소개하는데 큰 도움을 준 아스트로마(Astromar Miranda Braga). 나와 동갑이어서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끝 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의 나라 브라질
마약, 알콜 중독 치료시설, 아프레브(Aprev) 농장
아프레브 농장 사람들과 함께

[2005. 7. 6. 일기]

Assis에서 촬영을 끝내고 다시 Prudente로 온 시간이 새벽 1시 30분. 여기도 이제 내 생일이 되었다.
아마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생일이지 싶다.
하나도 아쉽지는 않다.
어제부터 각종 신문사, 방송국에서 취재를 오고 Assis 성당에서는 수백 명 앞에서 소개되고 기도도 받았다.
다 내 생일 축하려니 생각하면 최고의 생일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브라질의 매력에 흠뻑 젖어감을 느낀다.
정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사람들과 가는 곳마다 마음을 다해주는 환대들...
많은 곳에서의 짧은 일정들이기에 사람들과 더 깊이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철벽 같은 내 마음의 벽을 이렇게 금방 녹여주는 브라질 사람들이 참 좋다.

살바도르(Salvador)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일정, 동부 대서양 연안의 도시 살바도르다.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서 사는 나라 중 하나이다. 오래전 아시아에서 넘어온 원주민들이 있었고 이후 유럽인들이 침략하고 이주했으며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들여오면서 모든 인종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혼합되는 역사로 인해 브라질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게 되었다. 살바도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미 지역으로 온 노예선이 정박하는 대표 항구였고 그래서 아프로 아메리카(Afro-America) 문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가 그대로 느껴지는 거리와 건물들이 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거리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벌이는 까뽀에라와 신나는 리듬의 버스킹이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살바도르(Salvador)
살바도르 해변 야경
숙소였던 은총의 성모 성당(Igreja de Nossa Senhora da Graca)

살바도르에서는 성 베네딕도회 마르코스 수사님이 우리를 맡아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데리고 간 숙소가 남미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인 은총의 성모 성당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지은 지 450년이 넘었다는 말에 걸을 때도 촬영할 때도 조심조심 움직이게 됐고 잠잘 때도 방안에 오랜 역사의 기운이 가득찬 듯, 느낌이 사뭇 달랐던 기억이 있다.

숙소 창가에서 본, 살바도르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그림으로 프린트된 듯한 풍경에 한참을 넋 놓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예전 미술반 선생님에게 그림의 사물을 표현할 때 짙은 색 테두리를 쓰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살바도르는 짙은 테두리 없이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창밖의 풍경은 세월의 윤곽이 켜켜이 짙어져 선명한 그림 같은 작품으로 내 마음 속에 각인되었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살바도르 풍경
살바도르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해변을 촬영하는 한 시간 남짓 계속 사랑을 나누는 인상깊은 커플을 담기 위해 찍은 사진(右).

[2005. 7. 8. 일기]

열여섯 번째 비행

누워있는 초승달이 비행기를 따라오고 있다.
바로 옆에 별이 없었다면 그게 달인 줄 몰랐을 거다. 남반구에서는 달이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모양이다.
어제부터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더 많은 곳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살바도르.
다시 꼭 오고 싶은 리스트 위쪽에 올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가,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그 상황에 맞는 생활방식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걸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원주민으로 정복자로, 노예로... 처음 이곳에 존재하게 된 역사는 역사일 뿐,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관계와 삶으로 함께 어울려 멋지게 살고 있었다.

이곳으로 올 때처럼 공항에서 또 1시간 늦게 출발했다.
모두 그게 무슨 큰일이냐는 듯 무덤덤한 표정.
한국 같으면 여러 번 난리가 났을 상황들...
우리와 다른 문화를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유 있음, 긍정성, 느긋함...
참 좋은 태도지만 속 터져 죽겠다.
다른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들과 오래, 같은 방식으로 사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상파울루(Sao Paulo)

‘믿음의 노래’ 중남미 촬영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날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여정의 고단함에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많은 기억과 만남들을 주섬주섬 잘 챙겨서 귀국을 준비했다.

오브리가두~ 브라질레이호~


[2005. 7. 10. 일기]

어제 저녁 상파울루를 출발, 토론토를 경유해서 드디어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케냐 공항에서 스캔을 꾹꾹 눌러하다 생긴 여권의 균열이 마지막 토론토 공항의 이미그레이션에서 완전히 찢어져서 분리됐다.
비행기를 못 탈뻔했는데 운전면허증, 취재허가 공문 등등을 꺼내 겨우 나를 증명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맘 편히 진행되진 않았지만 이 길고 복잡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오른 내 자신이 참 대견하다. ㅎㅎ

머리보단 마음에 담아 가는 여행이길 바랬는데 역시 이런저런 일에 대한 강박 때문에 충분히 마음에 무얼 담을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이번 일정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경험, 기억이 나의 삶을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게 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마지막 13시간의 비행.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정리하고 기억하고 추억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세상 곳곳에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계셨던 그분이 우리를 인도해주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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