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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표 Dec 20. 2024

피자 3판으로 18명이 노는 방법

게임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기 말에 교실로 즐거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장애이해공감 주간을 맞아 교내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수어 챌린지'를 주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저희 반 학생들과 함께 수어를 연습해서 '밤양갱'을 수어로 표현하기를 해보았고요. 인증 동영상을 특수학급에 보냈더니 참가한 학급 전원 피자 3판씩을 보내준다는군요.  피자를 먹는 당일날 아침. 피자가 각 반에 3판이 배달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순간 피자를 어떻게 불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먹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말이죠.'

6교시에 피자가 배달이 되니 아직 저에게는 준비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주어진 결과에 불만을 갖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피자를 먹을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


자. 우리 반이 18명이고 피자는 8x3 = 24조각이 올 테니까 일단 1인당 1조각씩은 먹을 수 있어. 그럼 6조각을 어떻게 나누어 먹으면 좋을까. 때마침 원의 넓이를 배우고 있으니 수학적으로 대입할까? 그럼 수업 시간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할 텐데...

그래, 결국 예능이 답이다. 게임으로 가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복불복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5교시가 담임 수업시간이 아니라서 미리 배달 온 피자 3개를 업소용 가위로 요리조리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다른 여러 조각의 피자를 원하는 자리에 배치한 후 작은 컵 12개와 큰 컵 6개로 피자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고도의 심리전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컵 몇 개는 피자 끝의 머리를 살짝 보이게 하였습니다. 또한 약간 경사진 컵도 2~3개 만들어 양이 너무 많아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게도 했죠. 이윽고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의 디테일은 포기하고 바로 피자 타임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뽑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눈치 게임을 통해 잽싸게 1등과 18등까지의 순위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팅해 놓은 18개의 종이컵 복불복 판을 공개하였습니다.


"엥? 이게 뭐예요? 1등이 제일 큰 거 먹는 거 아니었어요?"
"제일 큰 거 뽑을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서 뽑아봐."
"아, 근데 선생님 여기 뭔가 베이컨이 튀어나와 있는데요? 너무 커서 그런 거 아닐까요?"
"글쎄. 나야 모르지? 이게 여기 왜 삐져나왔냐...? 이상하네?"


18 vs 1로 논리적인 싸움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제 생각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아이들 앞에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환희와 탄성이 난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종이컵에 생각보다 많은 피자 조각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큰 종이컵에 달랑 토핑 몇 개만 있어 탄식하는 학생이 있었지요. 제일 역점을 두었던 것은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피자를 얻는 학생이 없도록 최대한 많은 양의 피자가 컵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밸런스를 조절했더니 큰 소동 (?) 없이 피자 3판을 18명이 나누어 먹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딱 한마디만 하였습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 따라 하지 말자."

사실 복불복 게임의 핵심 요소는 약간의 도박성입니다. 도파민이 머리끝까지 분출되게 하는 행운은 때론 그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자 3판을 그냥 먹고 치우면 6학년 같은 경우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살짝 신경 쓰고 연구했더니 피자 3판으로 '공정'의 개념과 '도박 예방 교육'까지 간접적으로 할 수 있어 좋았던 하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설픈 게임이었지만 열심히 참여하고 주어진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P.S 콜라랑 소스는 내가 나눠 줄 거야. 이리 가지고 와. (거기까진 생각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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