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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중 다행' 래퍼 만수 정규1집 리뷰

항상 버티기만 했던 삶을 '불행 중 다행'을 통해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길

by 홍윤표

만수라는 인물의 30년 남짓한 인생을 30분 가량의 트랙을 듣고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그의 가난하고 외로웠던 유년시절, 성공과 목표달성에 대한 갈망과 그를 위한 인내를 눈여겨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느꼈던 많은 감정을 진솔하고 멋스러운 가사로 담아내기 위해 애썼고 결국 해냈다. 요즘 힙합 트렌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 의미없이 반복되지만 흥을 돋구는 각종 의성어들은 전혀 찾을 수 없는 만수의 앨범. 그래도 무엇보다 그의 앨범에선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실함이었다.


앨범을 정주행하고 나서 바로 느꼈던 감정은 2006-7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당시 랩 게임의 중심에 MOVEMENT 크루가 있었고 그 중 핵심은 단연 '에픽하이' 였다. 에픽하이는 여느 래퍼들처럼 묵직하고 둔탁한 비트를 발판삼아 진실과 맞서싸웠고 자신만의 철학을 부르짖었다. 소년 만수는 그들의 음악을 바탕으로 래퍼로서의 성장을 다짐했고 열악하고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메세지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 세상의 밑바닥이 아닌 밑받침' 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사생아' 나 '역마살'에선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수 없는 태생적인 환경에 대한 만수의 고뇌가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형' 트랙과 같이 자신을 믿어주는 존재 덕분이었다. 그는 결국 버텼고 그랬기에 정규 1집이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앨범 대부분의 프로듀싱은 DJ TIZ가 맡았다. 국내 힙합 언더그라운드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그는 메인스트림보다 정통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앨범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붐뱁 향은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미국 동부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머리에 비니를 쓰고 낡은 항공점퍼를 입고 인적 드문 공장에서 드럼통에 장작불을 지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곡 중간이나 말미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DJ TIZ의 스크래치도 시간여행을 하기에 충분했다.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통 붐뱁 사운드에 소년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덕분에 만수 앨범 전반에서 느껴지는 컨셔스함이 극대화 된 느낌이다.


만수의 랩 스타일이 친숙하고 듣기 편했던 이유는 아마도 나 또한 2000년 초반부터 한국 힙합을 나름 챙겨들어왔던 리스너이기 때문일 것이다. HOOK은 반드시 8마디로 구성되야 할 것. 4분의 4박자 정박에 들어가는 음절수를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할 것.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는 더블링으로 표현할 것. 펀치라인은 되도록 간결하되 언어유희를 느낄 수 있게 할 것. 이런 관습같은 습관의 무서움 덕에 만수의 가사가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앨범의 구성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관습같은 습관'이 느껴진다. '5528' 트랙을 전후로 우울하고 칠흑같은 이미지에서 갈수록 유쾌하고 미래지향적인 흐름은 마치 더 콰이엇이 소울컴퍼니 시절 발매했던 앨범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옛날 사람이 되가는 것을 느끼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흔한 오토튠도 없고 훅잡이도 없는 보기 드문 앨범이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요즘 랩 게임에 반드시 필요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래퍼들은 소설가, 작가와는 다르게 짧은 4~5분의 트랙에 자신의 메세지를 이야기한다. 시인과 또 다른 면이라 함은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면' 과 '다음에'를 통해 만수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가 고되도 나는 더 잘 살것이며 꼭 성공하리라는 다짐이 드러난다. '천재가 되기로 결심했다'를 통해 그는 래퍼로서, 어엿한 사회인으로써 어떤 자세로 세상에 임해야하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희망가를 앨범 마지막 트랙에 배치하는 '관습같은 습관'. 크으 뭐 아무렴 어떤가.


곡을 정주행하고 나서 리뷰를 작성하면서 계속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오는 힙합 신보를 모두 다 챙길만큼의 열정과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 오늘만큼은 예전에 많이 듣고 자랐던 정통 붐뱁과 간주마다 맛깔나게 등장하는 스크래치 사운드에 귀를 맡겨야겠다. 오로지 버티기만 했던 삶을 살았던 래퍼 만수. 그가 정말 '불행중 다행'같은 정규 앨범을 통해 앞으로는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실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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