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 거야 대한민국. 왜? 묵묵하지만 단단한 시민들이 있거든.
『오늘도 지하철 타고 출근합니다』의 저자 김호종 작가를 그의 전작 『엄마도 아빠도 육아휴직 중』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 역시도 나와 같은 공무원이었고 1987년생 또래인 데다 자녀를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거쳤다는 점에서 많은 접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남모를 동질감을 가슴속에 품고 이번 신작을 받아 읽어보니 자연스럽게 '인간 김호종'의 40여 년간의 집약된 인생과 속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큰 감명을 받았다. 묵묵하고 단단하며 꾸준하고 속이 깊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중, 고등학교 별다른 일탈이나 문젯거리를 일삼는 학생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으레 있을법한 추억인 자습 시간을 땡땡이치며 노래방, 분식집, PC방을 쏘다닌 적도 없고 변변한 추억 하나 없이 집에 있기 좋아하는 무색무취한 학생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은 인생에서의 몇 개 안 되지만 기적과도 같은 에피소드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있었던 사유의 여로를 한데 모아 담담하지만 묵직한 대한민국 가장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울림을 고스란히 세상에 내놓았다.
나도 막상 40여 년간을 살아보니 철없을 때는 당연했다고 생각했던 결혼과 출산, 육아의 과정이 절대로 순탄치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결혼한 지 6년이 넘도록 변변한 내 집 하나 없었으며 부모님께 변변한 선물이나 용돈을 턱턱 내드리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만 했다. 천직이라고 나름 생각해서 택한 교직도 시간이 갈수록 내 뜻과는 사뭇 다름을 겪고 있고 그 속에서 연년생 터울 두 아이를 밤낮으로 케어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작가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다. 그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고 싶은 딸아이와 배우자가 있었기에 그는 폭풍 같은 민원에서도 잔잔함을, 지옥 같은 통근 열차에서도 숨 고르기를 거듭했다.
그렇게 하나씩 그를 가로막는 퀘스트를 잘 견디고 이겨내자 주변에서 그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일이 손에 좀 더 잘 잡히기 시작했다. 동반 휴직이란 리스크가 있었지만 운과 실력을 등에 업고 7급 공무원으로 승진도 했고 약 2년간의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은 딸아아도 영아에서 유아기로 무럭무럭 성장해나가고 있다. 이 책은 표면상으로는 자서전에 가깝지만 그의 인생에서의 겪었던 어려움을 바탕으로 '성장'이란 키워드의 중요성을 읽는 이에게 제시한 다는 점에서 지침서에 가깝다. 한편으로 그가 40여 년간 겪고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를 살아갈 딸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응원하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작가는 마라톤을 좋아한다. 마라톤은 완주의 성취감도 맛볼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속에서 덜어 낼 것과 버릴 것을 차분히 견지할 수 있는 여유도 선사한다. 꾸준히 아빠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고 그 체력을 기르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운동은 달리기다. 그는 주말마다 틈틈이 달려 점차 달리는 거리를 늘렸고 21km 하프 마라톤을 두 번이나 완주해 낼 정도로 수준 높은 건각으로 성장한다. 그가 저서에서 느끼고 읊었던 '성장'이란 바로 그 키워드를 오늘도 몸소 실천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야기에서 흥미롭고 유익했던 부분은 바로 위인들과 유명인사들의 명언이었다. 어렸을 때 명언집을 따로 사서 읽을 정도로 명언을 좋아했던 데다 시간이 갈수록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명언은 가장 손쉽게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그들의 속사정을 일일이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말도 못 할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끝내 극복해 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서 오는 삶 속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선 이런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 그게 명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책을 덮고 나도 잠시 그동안의 대중교통수단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6살 때 한 손엔 엄마 손을, 다른 한 손에는 토큰을 쥐고 탔던 63-1번 버스, 고등학교 때 통학버스를 놓쳤을 때 홀로 타던 85번 버스, 후곡마을 학원가를 주말마다 가로질렀던 05번 버스, 대학 내내 편도 55분을 찜통 지하철에서 버티다 간신히 내리던 3호선 교대역 등. 그러고 보니 나는 버스와 지하철 중 두 개를 고르라면 지하철을 더 좋아했다. 똑같이 사람들에게 치여도 배차 시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고 노면이나 방지턱과 같은 변수가 덜해서 그랬으리라.
남은 인생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와 굴곡이 내 앞에 존재할 터이지만 작가처럼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담담히,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현재에 충실하며 다가올 미래에 무수히 쏟아질 기회들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 하루를 보낸 이들이여.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