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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티즌 Mar 18. 2022

저는 그냥 저인걸요


                                                                                                                                -신서연作 




우리는 ‘6호 처분’ 청소년이나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나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면서 청소년들에 관하여 미리 알아보고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20년 이상 학교 밖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다양하고 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한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을 만나 자문을 청하고, 통계자료를 비롯하여 연구 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일은 조금 늦어졌다. 


우리가 만난 일명 ‘학교 밖’ 청소년은 19세의 여성이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통해서였다. ‘학교 밖 청소년 문화 활동 지원사업 결과 보고 전시’를 관람하러 간 씨앗티즌 기획자가 유독 기억에 남고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어 그 작업자를 만나고 싶다고 연결을 시도했다. 연락을 받은 그녀도 자신의 사진에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신서연作


- 제 사진에서 뭘 보셨는지 궁금해요. 


- 우선 톤이 달랐고 감각이 달랐어요. 잘 찍었다라고 하기 보다는 다른 사진과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세션에 사진이 흩어져 있어도 신서연씨 사진은 금방 골라낼 수 있었던 부분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녀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빵을 만들고, 뮤지컬을 좋아해서 음악 작업을 해보고 싶어 음악이론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화실에 다니며 회화를 조금 배우다가 요즘에는 혼자 집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으며, 옷 수선을 좋아해서 입고 만남에 입고 나온 옷도 직접 바느질한 옷이었다. 한국 IT스타트업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도 있고, 현재는 프랑스 유학 준비 중으로 곧 어학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면 학과는 수학과나 심리학과를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뭐든 한 번은 다 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해보는 것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 우리가 주제를 ‘혐오’로 하는데, 어때요? 


- 완전 좋은데요! 


그녀의 시원한 대답에 우리들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도 있었다. 


- 저희도 자기 회고 차원에서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 나누었어요. ‘혐오’와 관련해서 개인적 경험이 있나요? 


- 직접적인 차별을 경험한 적은 운 좋게도 없어요. 은근히 뿌리 박혀 있는, 국가별로 나눈다던지 성별로 나눈다던지 하는 고정관념이나 그런 경험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중학생 시절 아일랜드로 유학 갔을 때, 호스트 집에서 지냈는데 그때에는 어렸으니까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아, 너희 나라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이해해주신 적이 있어요. 사람을 국적이나 어떤 카테고리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유학을 다녀왔다고 아일랜드에서 오래 있었다고 하면, 뭔가 너는 어떻겠네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냥 저인걸요. 차별이나 혐오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신서연作




-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위치가 사회적 시선의 위치에 서봤을 때에는 약간 ‘다름’의 시선이 있을 텐데, 그로 인해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신분은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이 제법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문제 되는 점, 불편한 점은 입시할 때예요. 입시할 때 전형 자체도 많이 다른 경우도 있고, 저 같은 경우 지금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검정고시의 경우가 아예 명시된 경우도 제법 있었고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서 거기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준비하는 거랑 아예 개별적으로 준 비하는 거랑은 어려움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학교를 안 다닙니다’고 말을 하면 시선들이 곱다고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저는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들 중에 제가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말하고 나서 노골적인 반응을 받은 적은 없지만, 사회적 구조상 어려움은 어려움인 것 같아요. 


-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단어나 어떤 명칭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그 나이라면 당연히 학교를 간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단어일 것 같아요. 




                                                                                                                              -신서연作




- 요즘 한국에서의 여성 서사에 관하여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가는데, 19세의 여성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 어떤 차별이나 혐오가 비슷하겠지만, 제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항상 상대에 대한 공감과 배려 나이 해를 갖기 위해 노력해요. 당신이 겪지 않은 일이라고 모두가 없던 일은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당연히 개선할 점 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단기적으로 분노를 유발하고 당장 결과를 보여주거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몰고 가는 일들이 많다 보니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입장도 있어요. 다른 면으로 뭐랄까 조금 아직 움직임 자체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역차별이라는 말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많은 입장과 부분을 살펴보고 다른 의견들을 많이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문제이긴 한 것 같아요. 


- 앞으로 우리가 청소년들을 만나게 될 텐데 우리에게 조언해 줄 내용이 있을까요? 


-딱히 명확한 답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을 개별이라고 봐서 '사람마다 다르겠죠.'라는 말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러게요.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는데 ‘대상’을 연구한다는 게 말이 안 맞는 걸 수도 있겠네요. 


- 연구를 하신다면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보세요 하겠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까 사람 상대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러게요. 우문현답이었네요. 확신이 드는 건, 더 개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겠다는 거네요.



일명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청소년을 분류하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했다.
애초에 우리가 만나고자 했던 청소년들을 ‘6호 처분 청소년’이었는데, 이 단어들이 어쩐지 너무 이분법적이 고 험상궂게 느껴졌다.


학교 안과 밖을 나누어 안에 있는 자들과 밖에 있는 자들을 차등하는 느낌의 언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처분으로 나누어진 10가지 종류 중 6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을 묶어 지칭하는 언어. 


며칠 뒤, kbs뉴스에서 경기도가 ‘학교 밖 청소년’ 12만여 명에게 1인당 5만 원씩 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는 곧 초중고 학생들에게 코로나로 인한 교육재난지원금을 5만 원씩 지급 할 예정인데,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지급되어야 형평성에 맞는다는 이유의 내용이었다.

그런 뉴스가 나오는 가운데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이미지들이 무척 불편하게 다가왔다. 마치 학교 밖 청소년 이 어떤 청소년인가 보여주는 것 같은 이미지들은 머리칼을 노랗게 염색한 청소년, 놀이터에 몰려있는 청소 년, 삼선 슬리퍼 신고 다리를 꼬고 있는 청소년, 어둑해지는데 무리 지어 어딘가 몰려다니는 청소년, 마치 창 살 속에 갇힌 것 같은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이미지를 계속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녀를 만나고 오지 않았다면 ‘학교 밖’ 청소년에 관한 뉴스에 귀가 쫑긋해졌을까? 부정적 인식을 고스란히 내보내는 미디어에 불편함을 느꼈을까? 우리는 이미 많은 자문과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변화되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언어를 찾아 표현하는 그녀를 보면서 ‘학교 밖’ 청소년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이자 프로젝트 메이트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그를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 또한 우리를 ‘친구’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직접 물어봤다. 


- 오늘 우리들과의 만남 어땠어요? 


-뭔가 새로운 친구를 만난 느낌? 나이랑 상관없이 말이 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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