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약하다. 특히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남자는 더 그러하다. 더욱이 약함을 긍정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남자는 더욱 약하다. 남자는 약하기 때문에 악해진다. 그래서 그 사실을 숨기고 외면하려고 강해지려고 악을 쓰는 남자들을 숱하게 봤다.
남자가 사장인 동네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 내게 타로점을 봐달라고 내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가 놓지 못하는 그 남자는 바로 그런 남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어렸을 때 기세 등등 잘 나갔다던 남자의 집안, 제법 똑똑해서 공부도 잘했을 남자, 하지만 이제 잘 살던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힌 여자의 남자는, 망한 제 아버지 대신 '가장'으로서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그래서 어머니와 누이들을 제 가족을 책임진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고작 서른 하나의 나이에 하던 장사도 내팽개친채 자신을 젊음을 모조리 저당 잡힌 채 경매에 미쳐있다.
하지만 제 어머니와 누이라는 '여자'를 위해서라는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제 곁에서 저를 가게를 돌보고 여친이라는 '여자'를 정작 카드빚과 대출의 사지로 몰고 있다. 그가 여자에게 했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책임을 진다면서 제 피붙이를 위해서 너를 이런 식으로 대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정말 인간에 대한 책임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야. 남자를 향한 여자의 사랑을 제 가족을 위해 이용하는 철저한 이기성. 타인에 대한 상식과 예의도 없는 주제에 '가장' '책임감' 운운을 떠들다니. 제 모순 속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을 남자가 측은했다.
되지도 않은 '한국적 효도'의 희생양이 여기 또 한 명 있었군. 그런 남자는 강해지려고 발버둥질 때 더 미쳐갈 뿐이야.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파멸로 가는 지점에서 자기를 버려달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자는 사실 버림을 받을까 불안해하는 거라고. 그러니 너 없어도 제대로 살 수 있게 그 남자를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