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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Jan 05. 2024

꿀 같은 한국 요리

너무 달아진 한식에 대하여 

  유난히 초콜릿을 싫어했던


  지금 생각해 봐도 나는 조금 특이했던 것 같다. 단걸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특히 초콜릿은 거의 싫어했다. 사탕이나 젤리 같은 음식도 그냥 있으면 먹는 정도였고 찾아먹지 않았다. 나는 단 것을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지금이야 아무거나 잘 먹지만 아직까지도 단맛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달달한 콩자반, 멸치조림, 땅콩조림. 밥상에서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들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것들. 반찬으로 나오면 나는 잘 집어먹는다.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내게 반찬이 아니다. 내게 밥과 달콤한 것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맛있어서 먹는 것이지 밥과 잘 어울리는 반찬이어서 먹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밥상, 특히 한식에서 달콤한 맛이 많이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빨간 탕을 먹으러 식당엘 간 적이 있었다. 매콤하게 끓고 있는 국물을 한 입 떠 넣었는데 당황했었다. 너무 달아서. 예상한 맛과는 달리 입안 전체에 달콤한 맛이 스몄다. 빨간 탕이 이 정도로 달아질 이유가 있었을까. 



  이미 익숙해진 입맛 


  자취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요리를 하면서 생각보다 놀랐다. 간은 잡혔지만 어딘가 부족할 때, 살짝 요리가 망한 것 같은 때 설탕은 의외로 만능 해결사라는 것. 내가 밖에서 먹어온, 혹은 집에서 먹어온 음식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설탕이 필수라는 것. 예상외로 설탕은 쓰임새가 많다. 


  백종원님이 초창기 소비자와 시청자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슈가보이'였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아는 그 맛이 난다면서 얼핏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설탕을 사용했다. 모두 익살스럽게 설탕을 넣는 모습에 즐거워했지만 한편으로 놀랐다. 집에서 요리를 하는 우리 엄마마저도. 정말 저 정도로 넣어야 우리가 먹는 그 맛이 난다는 사실에 말이다. 


  우리는 이미 적응을 마쳤다. 평소에 먹는 음식에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어가는지 모른 체, 입맛은 단맛에 적응했다. 단맛이 빠지만 우리의 혀는 공허한 맛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덕분에 한식이 점차 세계적으로 뻗어나감에 따라 한식이 너무 달다는 외국인의 평가도 더러 있다. 우리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한식은 실제로 달아졌다.   



 단짠단짠? 맵단맵단?


  어느샌가부터 단짠단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맵단맵단과 같은 말도 탄생했다. 짠맛과 단맛, 매운맛과 단맛의 공존이라는 의미다. 하나의 음식에서 두 개의 이질적인 맛이 공존하면 생각보다 많은 쾌감을 전해준다. 이상하고 어색할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자극을 오고 가며 우리를 매혹시킨다. 


  또한 아주 일차적으로 생각해 보면 단맛이 훌륭한 진정제가 되기 때문이다. 자극적으로 변모하는 한식은 갈수록 맛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짠맛보다 매운맛이 그러하다. 극도로 매운 음식이 유행을 탔다. 음미가 아닌 고통 참기를 위해 단맛이 투여되었다. 날카로운 맛을 조금이라도 둥글게 하기 위해서.


  게다가 단맛은 여기저기 사용할 수 있는 만능카드다. 언제나 과포화 상태인 요식업에서 단맛은 최선의 방어수단이 되어준다. 차라리 애매한 맛이 날 바에는 기준치 이상의 단맛이 나는 것이 낫다. 맛없는 음식보다는 조금 단 음식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용납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식과 설탕의 궁합  


  한식과 설탕의 맛남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역사적으로 설탕은 값비싼 감미료였다. 전 세계적으로 구하기 힘들었고 마음껏 먹기 힘들었다. 인류 역사에서 단맛은 늘 귀했다. 그것은 한국도,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설탕의 생산량과 소비량은 날이 갈수록 우상향 했고 한국도 근대화 이후 설탕을, 그리고 단맛을 마음껏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짧은 역사임에도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한식의 장류는 설탕과 너무 잘 어울린다. 둘의 만남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특히 간장과 고추장이 쓰이는 요리에서 설탕은 빠지지 않는다. 장이 가지는 짠맛과 감칠맛, 원래 품고 있는 단맛에 설탕이 더해져 달착지근해지면 그 맛은 배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각종 찜, 볶음 요리의 맛 구성은 대게 이런 식이다. 


  그리고 애초에 한식 말고도 우리의 단맛 섭취는 늘었다. 각종 디저트들과 과일, 타국의 음식을 먹으며 당류에 절여졌다. 자극은 늘 더 강한 것을 원하기에 역치값은 늘어났다. 우리는 단맛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단맛과 잘 어울리는 장류가 들어간 한식 역시 자극과 입맛에 발맞춰 더 달아진 것은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단맛의 섭취가 쉬워지고 입맛이 적응되면서 단맛과의 조화가 좋은 한식이 더욱 빨리 달아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얼마나 더 달아질까? 


  제로슈가부터 각종 대체당 제품까지, 설탕을 먹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요즘 대세다. 당류는 칼로리가 높고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단맛은 설탕의 대용품을 찾아 먹을 정도로 중요한 맛이 되어 버렸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나 필요한 맛이 되었다. 


  외식업은 대게 대중의 입맛을 반영한다. 외식 메뉴에 달아진 것도,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모두 우리의 입맛이 그쪽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설탕을 줄이고 단맛을 피하려 해도 쉽지 않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외식을 절제하고 끊어내고 스스로를 다스리면 몰라도 적당히 사회관계를 유지하며 바깥에서 무언갈 사 먹는다면 정말로 쉽지 않다. 여기에도 설탕이 들어가? 싶은 곳에 설탕이 들어간다. 달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도 정말 많은 설탕이 들어간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통계 상 한국인의 평균 설탕 섭취량은 WHO 권장량 이하다. 타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치다.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설탕과 단맛에 대한 탐닉은 늘어만 가고 있다. 전인류의 혀가 단맛을 많이 수용하는 쪽으로 맞춰가고 있다. 서서히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적응을 끝마쳤다. 덜 달아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더 달아질 일만 남아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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