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작가 Dec 28. 2023

일본 식당 좋아하세요?

외식업 전반에 널린 일식당에 대하여 

  지난주 을지로 


  지난주, 정말 오랜만에 을지로에 갔었다. 앉아있을 카페를 찾느라 꽤 오랫동안 을지로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을지로는 정말 많이 변했다. 구석진 골목에까지 식당과 카페는 둥지를 틀었다.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숨은 노포를 찾은 맛이 있었던 을지로는 정말 많이 변했다. 


  나는 코너를 돌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일본 음식점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거의 건물에 하나씩, 골목에 3~4개씩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일본음식 전문점이 아니었다. 파는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인테리어와 매장의 구성이 그냥 일본 현지에 있는 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간판마저도 순수한 일본어로만 되어 있었다. 내가 일본 거리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픈 역사와는 별개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일본은 한국과 매우 밀접하다. 문화의 교류도 많이 이뤄졌고 어쩌면 가장 친숙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식문화 역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일본 음식은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음식이다. 하지만 이 정도였을까? 일본 매장을 그대로 옮겨올 정도로 일본음식을 사랑했을까. 나는 을지로에서 놀라움과 황당함 그 사이의 감정을 느꼈다. 



  초밥, 돈가스, 이자카야 


  일식은 중식과 함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타국 음식이다. 한국식으로 현지화도 많이 진행되었고 음식의 맛 자체도 접근성이 낮은 편이다. 또한 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일식은 가볍고 깔끔하다. 언제 어디서나 대중적으로 고르기 좋은 메뉴가 많다. 데이트 코스에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일식은 호불호가 잘 갈리지 않는다.


  요즘은 이자카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왁자지껄하기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가벼운 안주 한두 개로 술자리를 이어가기 좋고 여차하면 혼술도 가능하다. 술을 많이 먹기보다 좋아하는 술을 한두 잔 하는 풍조도 한몫을 한다. 기본적인 일식의 장점을 가져와서 최근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접목시켰다. 


  선호도는 확실하다. 기성세대에게도 익숙하고 2030 세대도 무리 없이 즐기는 음식이다. 어쩌면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외식업 전반에 잘 스며들어서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음식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흡수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일본 거리에 있는 식당 하나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매장들. 식문화 그 이상의 문화에 우리는 열광하고 있다.    



   흡人력을 위해


  일본식 감성이 유행인 까닭일까. 화려하고 쨍한 색으로 점철된 간판과 인테리어는 한동안 촌스러움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레트로와 뉴트로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일본식 네온사인은 그것에 딱 맞아떨어졌다. 또한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보통의 한식당과 달리 어둡고 잔잔한 느낌의 일식당과 이자카야 역시 선호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식당에서 음식 이외의 것을 소비한다. 분위기, 감성, 혹은 경험으로 대변되는 것들이다. 일본의 분위기, 일본의 감성, 일본을 간 것 같은 경험. 일본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진짜 일본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친숙한 한국식 일식당보다 낯선 진짜 일본 매장들. 간판부터 인테리어까지 마치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힘. 공유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힘. 


  결국 핵심은 다르다는 것이다. 널리고 널린 일식당 중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 달라야 눈에 띈다. 그래서 일식당 분위기를 흉내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완벽히 재현했다. 사람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를 사로잡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요즘말로 풀어말하면 '힙하다'는 것이고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여행의 이유 


  '낯섦'은 우리가 여행을 가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평소에 하던 일, 걷던 거리, 가는 식당에서 벗어나 낯선 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일식당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트장처럼 기능하여 우리에게 짧은 여행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 땅에 있지만 마치 일본에서 느끼는 '낯섦'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일식이 가장 도드라지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가자 익숙하기 때문이다. 꽤 자주 일식을 소비하고, 일본은 근접국가로서 가장 간편한 해외 여행지다. 거기에 지금 일식당들이 가지는 장점과 감성이 현재 한국의 외식 시장의 리듬에 알맞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장 잘 반응한다. 그뿐이다. 


  일식당이 너무 많을 뿐이지 사실 세계 각국의 식당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매장은 어디에나 있다. 성장 중이던 여행 욕구에 코로나가 제동을 걸어버린 탓인지, 코로나 전후로 급증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식당이 많은 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저 익숙하고 잘 맞기 때문이다. 이러다 서구화되는 식습관에 맞춰 미국이나 유럽풍의 식당이 지금의 일식당의 위치에 오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호기심과 거부감 


  놀랐다. 그리고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그냥 일식당도 아니고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가져온 식당이라니. 나름 서울 한복판, 구도심 을지로에서 한글하나 없는 순수 일본어 간판이라니. 그러면서도 궁금해서 찾아봤고 계속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렇게 이국적인 것도 괜찮구나. 나는 그 식당의 마케팅과 전략에 고스란히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그럼에도 한구석에 답답하고 찝찝함은 묻어 있었다.  


  몇 년 전에 유명 카페를 중심으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유행했다. 흔히 말하는 공사판 인테리어다. 적절한 수준의 인테리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일종의 밈이자 조롱거리로 남았다. 소비자들이 품고 있는 마음의 선을 넘어버렸다. 결국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는 빠르게 사장되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사 인테리어는 거부감을 낳았다.  


  지금의 일본풍은 어떠한가. 내가 놀랐던 이유는 생각보다 많아서였다. 나름 전통 있는 노포와 한국적인 냄새가 그득한 을지로에 건물 당 하나씩 일식당이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일본의 뒷골목 같은 분위기였다. 이국적이고 예쁜 것도 좋다. 감성에 알맞은 것도 좋다. 하지만 하필 일본이다. 가깝고 친하지만 그만큼 예민하고 곤란한 나라. 유행하고 있는 이유를 막론하고 지금의 인기는 소비자가 품고 있는 마음의 선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 카페 멸종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