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동네 카페에 대하여
내가 이 업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던 그 순간에도 레드오션이었다. 대한민국에 카페는 너무 많으니 창업을 지양하라는 말이 허공을 떠다녔다. 그리고 카페는 여전히 창업 인기업종이며, 여전히 끔찍한 레드오션을 자랑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페는 너무나 많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피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입지와 상권은 창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일했던 매장 역시 최초에 창업할 당시에는 입지와 상권이 좋았다. 아파트와 학교가 도처에 있었고 그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카페도 거의 없었다. 준수한 커피를 들고 무혈입성하여 상권을 지배했다. 덕분에 수년간 많은 단골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상권과 입지는 모두의 먹잇감이 되었다. 프랜차이즈와 개인 창업자 가리지 않고 탐냈다. 결국에 어지간한 건물에 하나씩, 근처에 10개가 넘는 카페가 생겼다. 이는 비단 내가 일한 카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입지가 괜찮다 싶으면 순식간에 카페가 난립한다. 내가 살았던 그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도 어느새 6~7개가 넘는 카페가 생겼다. 아무리 커피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해도 공급이 수요를 한참 앞질렀다.
매장에 있어서 비수기인 것도 맞지만 유동인구도 너무나 없었다.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들도 몸을 움츠린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삐 가기 일쑤였다. 움츠러든 몸만큼이나 소비도 줄었다. 경제는 연이어 부정적인 이슈만 쏟아냈고 지출 많은 연말이 되었다. 덕분에 소비자는 지갑을 잘 열지 않았고 기호식품인 커피는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았다.
참 커피에 진심인 매장이었다. 커피 맛도 각별히 신경 쓰고 실제로 맛있는 커피를 내렸다. 짧은 시간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가격대비 최대한의 맛을 뽑아냈다. 까다로운 단골들의 입맛도 잘 맞췄다. 커피 맛은 변함이 없었지만 소비자는 우리 매장의 커피를 이제 선택하지 않았다. 맛과 가격의 경쟁에서 가격이 승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커피는 현대인의 필수품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그 성질은 기호식품이다. 카페 문화가 한국에 상륙한 지 이제 20여 년 남짓. 모두가 아메리카노를 수혈받지만 사실 음료보다 카페인을 담는 도구로서 기능할 때가 많다. 적당히 씁쓸하고 커피 향이 나며 카페인이 담긴 음료면 됐다. 소비가 위축된 시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맛있는 커피보다, 저렴하고 그럭저럭 먹을만한 커피가 경쟁력이 있었다. 소비자는 저가커피에 열광했다. 경제 상황과 한국의 커피 문화가 만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23년 외식업에서 화두가 된 트렌드 중 하나는 양극화 소비였다. 커피 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비자들이 저가커피에 열광하면서 양극화는 가속화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커피 시장은 싼값에 카페인을 섭취할 수 있는 저가 브랜드와 감성으로 대두되는 프리미엄 카페로 양분되고 있다. 아낄 땐 아끼고, 그렇게 아껴 고가의 커피를 사 먹는 것이다.
직장인 기준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저가커피를 마시고 주말에는 핫플레이스에 있는 유명 카페를 간다. 맛이 좋아도 애매한 가격대의 커피라면 차라리 저가 커피를 먹고 나중에 더 예쁘고, 더 감성 있는 카페에 돈을 쓰는 것이다. 결국 그 사이 가격대에 위치한 동네 카페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버렸다. 비슷한 가격대의 프랜차이즈는 그나마 브랜드 인지도와 자본으로 생존 전략을 구가할 수 있으나 동네 카페는 그저 힘겨울 따름이다.
나는 봤다. 분명 며칠 전에는 우리 매장에서 커피를 드시던 단체 손님들이 어느 날 손에 저가 브랜드의 커피를 들고 매장 앞을 지나가는 것을. 그나마 인근의 중소 규모의 프랜차이즈들은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각종 이벤트를 벌이며 나름의 대응책을 펼쳤다. 가히 프랜차이즈 다운 전략이었다. 하지만 우리 매장을 비롯한 토종 동네 카페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서히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잘 되는 이유를 찾으면 수도 없이 많고, 망하는 이유를 찾아도 수도 없이 많다. 일하던 매장에 손님이 줄어든 이유는 이외에도 더 있을 것이다. 대응이 늦었고, 각종 내부적인 문제들과 나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요인들이 곳곳에 있었으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네 카페의 수난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한적한 주택가에서 실력 좋은 바리스타가 개성 있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 인근 주민들이 주로 찾으며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따스한 곳. 내가, 우리가, 혹은 각종 미디어가 꿈꾸는 동네 카페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을 수 있다. 하나의 상권에 비슷한 카페들이 난립하고 그것들의 틈 사이사이에 프랜차이즈가 끼어들어온다. 누군가는 뒤쳐지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다.
도태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안일했던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 와중에도 잘 되는 곳을 잘 되니까. 결국은 생존전략의 일부니까. 그러나 내가 이 업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으로 가졌던 환상, 동네 카페는 수난기를 넘어 어느덧 멸종기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일자리를 잃은, 애정하던 카페를 잃은 내 분노와 안타까움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골목길 사이에 선물처럼 위치한 동네 카페는 이제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