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는 너무 어려워
외식에서 소외되는 디지털약자에 대하여
그리고 오늘 당신은 누구입니까
LG트윈스가 우승했다. 나는 두산의 팬이지만 서사가 담긴 LG의 우승은 참 특별해 보였다. LG가 우승을 확정 짓자 한 캐스터가 우승콜을 했다. "1994년 가을,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오늘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멘트와 함께 29년 전, 마지막 LG의 우승을 목도했던 중장년 팬들의 눈물이 화면에 잡혔다. 강산이 세 번 정도 변할 세월 동안 팬들도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뉴스에는 한 노년 팬의 안타까운 사연이 나왔다. 오랜 LG의 팬이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티켓팅을 하지 못해 경기장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할아버지였다. 29년 전 우승을 목도한 누구는 오늘의 누구가 될 수 없었다. 전좌석이 온라인으로 팔릴 만큼 세상은 변했지만 그 변한 세상을 쫒아가지 않은, 그리고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더랬다.
사람이 하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공상영화나 미래 보고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 현실이 되었다. 사람이 발로 뛰고 몸을 쓰며 목소리로 전달하던 것들이 홈페이지, 기계, 알고리즘이 대체했다. 외식업이라고 다를 건 없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려 해도 직육면체의 작은 기계와 대화를 해야 한다. 예매와 주문이 어려워진 세상. 1994년 가을, 온라인 예매와 키오스크는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따라가기엔 지쳐버렸다.
갑작스러운 혁명
키오스크는 원래 몇몇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손님이 몰리는 러시 타임이 존재하고 속도가 생명인 업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좀 바뀌었다. 외식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원가는 자꾸만 올랐다. 인건비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캐셔를 고용하는 것은 사치였다. 젊고 어린 소비자들은 대면보다 비대면이 마음 편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변화의 바람은 더욱 빨리 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코로나가 쐐기를 박으면서 키오스크는 빠르게 번식했다. 이런 환경에서 키오스크는 명확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저렴하고, 사람을 고용했을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편과 문제가 없다. 물론 업종과 업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키오스크는 훌륭한 보조수단이 맞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소비자들에게 이것보다 무서운 것도 없다. 식당을 가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처음 키오스크를 맞닥뜨렸을 때, 잠깐 멈칫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제없이 사용했다. 스마트폰과 각종 기기들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노년층들은 스마트폰 조작도 이제야 겨우겨우 따라왔다. 덕분에 식당에서 만난 키오스크는 당황스러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글씨가 작고, 직관적이지 못하며, 메커니즘이 복잡했다. '다음'이라는 글씨를 찾지 못해 메뉴를 넘기는 것도 버거웠다. 혁명의 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추격의 속도가 늦기도 했다. 이 두 가지가 만나 지금처럼 멀고 먼 간극을 만들었다.
어려움 그 이상의 두려움
입대하기 전, 문해교육봉사를 했었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는 봉사다. 활동을 하면서 깨달을 점이 참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다. 그분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스무 살 대학생 못지않지만 그와 동시에 무지한 분야에 가지는 두려움 역시 상당하셨다. 물론 우리 역시 누구나 그런 두려움은 있지만 어르신들, 노년층이 가지는 두려움의 수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런 두려움은 한글과 같은 기초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등의 기술적인 지식에서도 오는 법이다. 한글 수업 도중에 식당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어머님이 내게 무섭다고 하셨다. 요새 뭘 먹으려 해도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주문해야 해서 두렵다고 하셨다. 가끔 나도 키오스크가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어려움과 두려움은 단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느낌이 너무나도 다르다.
문해교육은 단순히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글을 가르쳐 드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내가 그간 써온 것을 차근차근 알려드리면 된다. 핵심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쥐어드리는 것이다. 글을 쓸 수 있고, 한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한글을 몰라 겪은 곤란하고, 서러웠던 일은 깎이고 깎여 두려움이 되었다. 키오스크, 그 네모난 기계가 누군가에게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갉아먹는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서 노년층이 느끼는 소외감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키오스크 수업?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될 수 있기에 '키오스크 교육'이라는 키워드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키오스크의 조작법과 작동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능사인지는 모르겠다.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자신감과 자존감의 싸움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이 모든 것이 키오스크 교육이라는 하나의 수업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지나친 일반화이자 섣부른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알려주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누군가 옆에서 생각보다 섬세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배운 것을 써먹기 위해 실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실습도 필요하다.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서 이것을 해야 하며 중간중간 자신감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 이 과정을 거친다면 노년층도, 디지털 약자도 충분히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러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키오스크를 사용해야만 하는가? 이 정도의 재화와 인력을 투입해서 교육할 만큼 필수적인 것인가? 키오스크 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팬데믹은 끝났다. 소비자에게 주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할 만큼 무인 주문이 과연 필요할까.
키오스크는 너무 어려워
이 문제는 단순히 노년층에 그치지 않는다. 중장년층도 키오스크에 익숙지 않다. 청년층도 때때로 피로함을 느낀다. 서비스업에서 직원이 담당하던 주문과 결제에 관한 업무를 고객에게 이양시키면서 우리가 남몰래 얻게 된 피로감도 있다. 대면 주문의 불편함과 서비스업의 효율성, 그리고 비용 문제 해소를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었던 키오스크에게는 이제 숨 고르기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가파르게 성장하던 '무인'이라는 키워드는 주춤했다. 외식업에서 꺾일 줄 모르던 키오스크와 무인매장의 인기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엔데믹 등의 여러 요인이 있지만 시니어와 디지털 약자도 하나의 요인으로 뽑혔다. 소비주체로 우뚝 솟은 노년층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노년인구와 그들의 씀씀이. 나름의 소비력을 갖춘 그들을 직육면체의 키오스크 앞에 덩그러니 두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서비스업에서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난감한 비대면 주문이 아니라 익숙한 대면 주문은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주문의 보조수단으로 키오스크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지만 메인으로 사용하기에는 모두에게 아쉬움만을 남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