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다 띠라하는 식품업계에 대하여
식품의 성공 공식이 존재할까? 어떤 과정을 거쳐 상품을 내놓고 어떻게 팔면 성공할까? 애초에 성공이란 정의는 무엇인가? 적자가 나지 않는 것. 매출을 올리는 것. 꾸준히 팔리는 것. 살아남는 것. 관심을 끄는 것. 열풍을 일으키는 것. 완판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것. 성공이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만약 그 정의를 매출을 올리고 적당히 팔리는 것으로 둔다면, 그렇다면 식품의 성공 공식은 모방이다.
히트 상품을 내놓는 것은 뼈를 깎는 일, 내지는 복권을 긁는 일과 같다. 노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야 한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히트 상품을 내놓으면 그 어떤 시대보다 소문이 빨리 퍼지는터라 팔리는 것은 물론 구하기조차 힘들어진다. 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상품은 대부분 뜨겁게 달아오르기 마련이었다. 허니버터칩, 포켓몬빵, 연세크림빵, 원소주, 먹태깡 등등 한 번쯤은 우리의 SNS에 스쳐갔을 바로 그 상품들 말이다.
앞서 서술한 대부분의 상품들은 후발주자를 낳았다. 많은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해당 식품군의 규모를 전체적으로 키운 긍정적인 사례들도 더러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후발주자들은 넓디넓은 시장이 아닌 성공한 그 상품 하나만을 주목했다. 시장을 넓히는 것보다 상품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성공에 접근하는 방법이었으니까. 바야흐로 대 카피캣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대처법이다. 경쟁사에서 출시한 히트 상품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히트 상품을 시기적절하게 내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경쟁사에서 출시한 신상품을 미리 파악하고, 그 신상품이 히트될 것임을 예측하여 대응할 수 있을까? 그 예측에 기반하여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모방 상품, 미투 상품이라고 소비자에게 인식될지라도 따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최소한의 파이는 빼앗을 수 있으며 그들의 성공에 흠집을 낼 수 있다. 원조가 따로 있는 상품임을 알면서도 결국은 사 먹는다. 게다가 원조 상품이 연일 매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옆에서 은근히 비슷해 보이는 모방 상품이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같은 업계의 제조사에서 만든 것이라면 맛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소비자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그 정도만 해도 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쯤에서 또 등장하는 그 녀석. 2010년대 이후 식품 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한 녀석답게 암묵적으로 만들어졌던 카피 전략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한 장본인이다. 이전에도 식품업계에서 상품을 카피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법적 분쟁으로 번진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허니버터칩 때는 그 분위기가 달랐다.
허니버터칩은 광풍 그 자체였다. 제과 업계를 넘어 식품 업계 전체를 허니버터칩이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경쟁사는 반드시 대응해야 했다. 그럴 분위기였고, 그래야만 했다. 허니버터칩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카피 상품들은 훌륭한 대체품이 되었다. 허니와 버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충분했다. 오리지널은 구하기도 힘드니 그 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잘 나가는 허니버터를 먹어봤다는 그 경험이 중요했다.
앞서 말했듯 식품 업계의 카피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제조사가 한 번쯤은 사용했던 전략이다. 다만 특정한 한 상품을 제과 업계 전체가, 식품 업계 전체가 모방한 경우는 되짚어 보아도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제조사들은 이를 통해 깨달았다. 무언가 변했구나. 시장에 따라가기 위해 카피하는 것, 그것을 소비자들도 심리적으로 용인해 주었다. 허니버터칩 이후로 으레 그렇게 따라 하겠지 싶은 것이다. 인기 상품을 따라는 비겁한 행위가 아니었다. 카피상품은 구하기도 힘든, 그러나 나만 주변에서 먹지 못한 이 피로하고도 외로운 상황을 타개해 줄 한 줄기 빛인 셈이다.
허니버터칩은 수많은 아류작들을 뒤로하고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반짝하고 사라진 줄 알았지만 폭풍 같았던 시절보다 못할 뿐 여전히 팔리고, 여전히 먹힌다. 하지만 그것은 10년이 지난 지금,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감상이다. 허니버터칩이 한창 팔리던 시기, 수많은 모방상품이 나왔던 그 시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 팔렸지만 조금 과하다 싶었다. 감자칩은 물론이고 각종 스낵과 디저트, 심지어는 음식에도 허니버터가 묻었다. 허니버터칩의 인기에 힘입어 온 세상이 꿀과 버터로 물들었다. 질렸다.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허니버터' 플레이버가 식품계를 장악하자 솔직히 조금 질렸다. 허니버터칩 인기에 편승했던 어중이떠중이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그 제품들은 소임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껏 인기가 있을 때 흐름을 타고 단기간의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남은 제품들은 길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제 허니버터칩만 남았다. 마니아층을 붙잡으며 꾸준히 판매량 순위권에 랭크되었고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결국은 원조만 남았다. 허니버터칩 이후, 식품의 유행주기는 짧아졌다. 긴 시간 왕좌에 군림할 제품들도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대부분은 단기간에 치고 빠질만한 제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제품들의 미래는 허니버터칩이 보여줬다. 원조를 둘러싼 아류들, 그리고 홀로 남은 원조. 아류들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가장 큰 거목이었던 원조는 쓰러지지 않았다.
허니버터칩 이후 제품들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빠르게 뜨고, 빠르게 졌다. 좋게 말하면 트렌드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비자들이 빠르게 싫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의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다.
자극은 강해졌고 지속력은 줄었다. 자극이 강해서 우리가 싫증을 쉽게 느끼는 것인지, 싫증을 쉽게 느껴 자극이 강해지는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정확한 인과를 알 수 없지만 우후죽순 쏟아지는 모방제품은 원인과 결과를 모두 차지했다. 경쟁사 제품의 가장 훌륭한 대응책이 되어 버린 지금, 모방과 표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급격히 추락한다. 경쟁사 제품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지금도 트렌드를 공략하고 있다. 죽음보다 모방이 낫다. 소멸보단 표절이 낫다. 그렇게 살기 위해 경쟁사의 인공호흡기를 빼앗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시금 빼앗긴다. 숨을 헐떡이며 생존을 구가하는 경쟁사들의 대카피캣 시대는 이제 막 시작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