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상하는 뷔페에 대하여
'뷔페여 잘 있거라'라는 글을 쓴 게 2년 전 이맘때였던 것 같다. 당시 방문했던 뷔페가 실망스러웠고, 언론에서는 뷔페 산업의 위기라는 말을 내뱉었다. 실제로 굵직한 프랜차이즈 뷔페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뷔페는 확실히 사양 산업이었다. 가격과 맛을 모두 챙기지 못해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비단 뷔페뿐만 아니라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음식을 제한 없이 먹는 이른바 무한리필 업종이 그랬다. 대부분이 가성비와 프리미엄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뷔페는 결국엔 먹을 게 없다는 생각, 무한리필은 소위 말해 뽕을 뽑지 못하다는 결말. 더해서 코로나와 각종 내외부적 요인이 버무려져 뷔페의 인기는 예전만 못했다.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랬던 뷔페와 무한리필은 완벽한 반등에 성공했다. 내가 쓴 글이 무색해지게 재정비를 잘한 뷔페 프랜차이즈와 신생 무한리필 가게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몇 해 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웨이팅이라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뷔페는 잘 있는 것을 넘어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아주 잘 팔고 있다.
근래의 외식/식품 트렌드는 슬프게도 올라버린 물가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뷔페도 그렇다. 몇 년 전, 뷔페는 동네 한식뷔페가 아닌 이상 가성비란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한 끼에 2~3만 원임에도 양껏 먹는 것을 제외하면 맛과 품질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었다. 뷔페란 음식을 얕고 넓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거기서 물가가 더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도 몰랐다. 괜찮은 식당에서 2인에 5만 원이 나오는 세상이 됐다. 그런 세상에서 2~3만 원으로 다양한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다고? 뷔페는 그렇게 얼떨결에 가성비 업종으로 변했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때로는 연인끼리 부담 없이. 뭘 먹어도 부담되는 세상이니까.
뷔페가 주는 만족감은 단지 음식을 먹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수십 가지의 음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치스러움이 주는 쾌감은 실로 엄청나다. 먹고 싶은 것을 담고, 맛이 없으면 그대로 버린다. 평소엔 낭비였으나 뷔페에서만큼은 허락된다. 물가가 올라 음식의 양은 줄고, 가격은 올랐다. 줄어든 선택권 속에서 뷔페는 단지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허한 마음까지도 함께 배부르게 해 준다. 아주 잠시동안 물가에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뷔페들 역시 스스로 변화를 꾀했다. 애슐리가 단연 대표적이다. 매장을 개편하고 시스템을 손봤다. 얼마 전 방문했던 애슐리는 인산인해였다. 가히 웨이팅을 걱정할만한 수준이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음식이 대단히 맛있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몇 해전 방문했던, 몇 개의 지점들에 비해 확실히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뷔페란 자고로 사람이 북적여야 한다. 음식이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 금세 동나야 한다. 다시 따끈한 음식이 채워지고 그것은 만족으로 이어진다. 항상 따듯한 온도를 유지만 해줘도 충분히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애슐리는 그리고 반등한 뷔페들은 모두 앞선 방식으로 재기했다.
자연별곡과 계절밥상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프리미엄 한식뷔페의 선두주자였던 두 브랜드는 차츰 기울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브랜드의 이미지 소비가 급격했던 점, 테마가 한식으로 다소 제한적이었던 점 등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들의 몸부림은 다시 일어나기엔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뷔페 산업이 한창 흔들리던 시기 굵직했던 박힌 돌들이 대거 정리되었다. 살아남은 박힌 돌들도 몸집을 줄이고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확실히 박힌 돌이 너무 많긴 했다. 어지간한 쇼핑몰과 번화가에는 뷔페들이 들어차 있었으니까. 가성비를 앞세웠던 무한리필 업종도 몇 차례의 격변기를 거쳐 요즘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박힌 돌이 빠져나가자 새로운 돌이 굴어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샤브샤브 뷔페는 현재 가장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형태의 뷔페다. 여럿이 먹기 좋고, 깔끔하고, 부담이 없는 것 같다. 자극적인 음식을 흡입하는 여타 뷔페와 다르게 왠지 더 건강해 보인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든든하며, 한국의 정서와 잘 맞는다. 곳곳에 생겨난 샤브샤브 뷔페에는 늘 긴 대기열이 걸려있다.
과잉공급되었던 뷔페들이 소비자의 수요가 줄자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촘촘했던 뷔페의 공급은 다소 여유롭여졌다. 그 틈을 비집고 기존의 뷔페와 새로운 뷔페들이 잘 버무려지고 있다. 소비자는 전처럼, 혹은 전보다 더 뷔페를 원하고 있다. 그 수요에 맞게 뷔페의 공급은 다시 이뤄지고 있다. 박힌 돌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도 생겼네? 자주 가는 동네에 샤브샤브 뷔페가 생겼다. 요즘 주변에 샤브샤브 뷔페가 꽤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체감상으로는 과거의 한식 뷔페가 생겨나던 속도와 비슷한 것 같았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뷔페, 웰빙 테마, 급속도로 팽창 중인 규모, 꽤 유사한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여러 지역의 뷔페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거주지 근방의 뷔페 밀도는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다. 웨이팅이 극도로 길지 않으면서 늘 사람이 북적여 따듯한 음식을 먹을 확률이 높은 밀도. 그것이 지금이다. 하지만 분명 밀도는 높아질 것이다. 유망한 업종임이 확인되었고 옛 브랜드들이 부활에 성공했다.
침체되었던 산업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생겼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뷔페는 다시 과잉공급될 것이다. 과거를 발판 삼아 무리한 확장은 삼가할 수 있으나 이 빈틈을 노리지 않을 리 없다. 물론 샤브샤브 뷔페는 이전 한식뷔페와 그 궤가 다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음식을 제한 없이 먹는다는 것은 같다. 한식뷔페가 떠오를 때 그 누구도 뷔페 산업 전체가 침체될 줄 몰랐다. 소비자가 조금 질린다라고, 가격대비 아쉽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의 박힌 돌은 어떤 브랜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