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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Mar 29. 2024

봄의 Harmony

봄 되면 고향집 할머니 생각이 난다.

5월 늦봄에 돌아가시기도 했고, 애틋해서 생각난다기보다 내가 30대를 훌쩍 넘기고 결혼하던 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내게는 그냥 숨 쉬는 공기에 가까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이맘때쯤부터 해서 겨울 직전까지 산에서 계속 이름 모를 나물을 해와서 먹고 팔고 했는데 그래서 봄 되면 생각난다.


할머니에게 봄은 너무너무 신나는 절기였다.

산두릅 산가죽에 뭐 더 이상 알지도 못할 온갖 나물들을 가까운 재래장에 보따리를 이고 내다 팔았는데 내가 버스에 보따리를 올려주고 같은 버스를 탈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촌에 처박히지 않고 차라리 억척스레 장사나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버스에서 할매 잘 가 빠이염 하고 손 흔들면 ㅇㅇ 한 뒤 버스문이 열리면 장사들이 흥정하려고 보따리를 뺏어드는데 할머니는 보따리를 쉽게 빼앗기지 않으면서 어허 이거 와이카노 하며 익숙하게 흥정했다. 그 당시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봤었는데 장사하는 우리 할매나 다른 할매나 다들 머리는 바글바글하니 동글동글하니 쪼글쪼글해가지고 보따리를 이고진 모습들이 움파룸파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여간 봄에 바빴다 할머니는.

나물은 값이 꽤 좋았다. 할머니는 우리 집 뒷산에서 캐오는 나물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내내 내다 팔아서 쌈짓돈을 만들었다. 젊었을 때도 온갖 나물을 캘 수 있었지만 쓸데없이 추상같은 시어른 기세에 눌려 일없이 먹거리로만 하다가 돈을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 돈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옛적에 팔아먹은 아들 금반지도 새로 해주고 며느리 생일날 북엇값도 주고 손자며느리에게 용돈도 주었다. 어린이로서 생명은 끝난 지 오래인 30대의 나에게 어린이날 용돈을 주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쌈지를 고모가 넌지시 찾았지만 엄마는 그건 자기가 찾았고 그 돈으로 할머니가 원했던 할아버지와의 49재를 치르는데 다 털었다고 이야기했다. 단순히 고모는 노모의 유품을 찾고 싶어서였을 거 같지만 정말로 49재를 치를 동안 엄마는 그 쌈지에서 나온 돈으로 비용을 보태고 모든 가족들에게 노자를 올리라고 일일이 쥐어주며 10원 한 푼 남김없이 깨끗이 비운 후 마지막에 할머니의 다른 물건과 홀 태버렸다.


단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이미 죽어서 산에 누운 할머니의 단점을 일일이 들추어 무엇하랴. 그냥 봄나물 나오는 봄 무렵에 간간히 생각난다. 나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 그랬는지 간혹 꿈에서 생시같이 귀찮은 할머니를 만나곤 하는데 사실 그럴 때는 그날 일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런 날은 밤에 자기 전에 아우 할마씨 고마 죽어서도 사람 귀찮게 그러네 한소리 하고 다음엔 로또 번호 알려줄 거 아님 나오질 마라고 투덜대며 잠든다.  요즘은 봄이라 바쁜지 안 나온다. 나도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할머니가 옅어짐을 느낀다. 순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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