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따따 Apr 30. 2024

시고르자브 성님

동서는 나보다 결혼을 상당히 먼저 했고 연배도 훨씬 위라서 손아래라도 항상 존대여 대한다. 그도 나에게 성님 대접을 해주기에 예의 있게 지낸다. 복잡한 사정으로 오해는 쌓여 있었으나 선만 넘지 않으면 급발진할 일은 없으니 그냥 잘 지냈다. 일 년에 세네 번쯤 보는데 못 지낼 건 뭔가.

어제는 동서가 전화가 오더니 그간의 오해를 풀만한 모든 이야기를 우수수 풀었다. 갑자기. 시가는 첫 며느리에게 어마하게 혹독했던 모양이다. 나는 사실 내 고향집 성향보단 시가 성향이 어떤 면에선 나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보다 연상의 똑부러지는 첫 며느리랑 오지게 파이팅 한 후라서 나한테는 다소 루즈하게 대했는가 보다. 무릇 며느리야 남의 집 자식이니 대개는 이 시가에서 섭섭할 일이  한두 가지인가. 럼에도 동서는 특히나 많이 섭섭하게 지냈던 듯하다. 럴만한 일을 나도 일정 부분은 보고 겪었으니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정말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했다. 중간중간  맞장구도 잘 쳤지만 그저 듣기만 했다. 동서 좋은 사람인지 어떤지 잘 모른다. 어쨌거나 가족의 범주에 들었으므로 섣부른 판단 자체를 안 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실은 좋은지 나쁜지 별로 궁금하지 않고 산야를 끼고 어슬렁 살아온 촌사람인 내가 서울 한복판에서 숨 가쁘게 반세기를 산 서울 언니야를 이해하긴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궁금해하는 건 다소 실례라고 생각했다. 전화해 주니 무척 고마웠다. 한데 왜 내게 갑자기 모든 이야기를 털어내는지 의아하 하다. 세례를 받았다고 했는데 그래서인가. 나한테 고해할 일이 뭐가 있는가. 나는 내가 근엄한 진돗개 같아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켜봤더니 막상은 그냥 편하고 수더분한 시고르자브 같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경계 없이 보따리를 풀다니. 하여간 잘 들었으니 앞으로 촌집 뒤져서 나오는 곡식이나 채소는 동서님 자네가 더 많이 가지고 가시세요. 멍멍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예쁘다 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