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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Jun 07. 2024

정말 눈물이 날까? 눈물의 여왕

눈물의 여왕을 달랜다

정말 눈물이 날까? 눈물의 여왕


 설 민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데도 내 몸은 푸석푸석하다. 눈까지 뻑뻑하다. 

   몇 년 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다소 멀리해 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내가 뒤처질 것 같은 강박적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에 대한 오해와 자기 계발 과잉의 부작용일 거라 생각된다. ‘누구를 위한 계발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어느 날 문득 드라마, 영화, 연극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애써 그것들을 외면해 온 나를 발견한다. 그 속에 살면서 분석하고 느끼고 감동받아야, 내 몸에 체득이 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거늘. 책을 읽는 일이 그러하듯,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기본은 보고, 듣고, 느끼고,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때론 너무 쉬운 진리를 먼 길을 돌아오며 다시 알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하면 되는데 자꾸만 그 일을 위해 다른 짓을 벌이고, 더 잘하려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한다면서 밑밥을 깐다. 그 무게에 짓눌려 지칠 때까지. 그래서 성공의 진리가 “지금 당장, 간단하게”인 가보다. 

   어느 때부터인지 눈물조차 메마른 자신을 보았다. 이대로는 새싹이 돋아나는 이 봄에 낙엽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드라마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정말 눈물이 날까? 내 마음이 촉촉해질까?”하는 기대로 보기 시작했다. 


[눈물의 여왕]

2024년 3월 방영된 드라마. 

3년 차 부부. 이들의 위기와 기적처럼 다시 시작되는 사랑이야기.


   세기의 결혼인 퀸즈 그룹 재벌 3세, 백화점의 여왕 ‘홍해인’과 용두리 이장 아들, 슈퍼마켓 왕자 ‘백현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두 사람의 가족 구성원과 주변 인물들이 개성적이면서 극의 무게감을 줄어준다. 

   이 글은 ‘홍해인’과 ‘백현우’ 두 인물을 중점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는 재벌가의 사랑이야기이다. 헬기가 등장하는 스케일과 집안의 구조로 보아하니 퀸즈 가는 보기 드문 재벌가다. 거기에 회장 내연녀의 계략으로 위기를 맞는 가정사가 펼쳐진다. 사랑과 복수로 똘똘 뭉친 윤은성. 그 일가에서 돈을 벌겠다는 계략을 꾸미는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들이 극을 흥미롭게 끌고 간다. 그런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홍해인’은 재벌 3 세답게 자존감도 높고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상처받은 한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진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족들과도 마음을 닫고 산다. 오직 일의 성과만이 그녀가 가족에게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감이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해 해인의 엄마는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다. 같은 자식이라도 미워할 수 있는 게 사람인지라 이해는 되지만 어린 해인에게는 너무도 혹독한 벌이었을 것이다.  

   그런 반면 ‘백현우’는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자존감 높은 사람이다. 무한 신뢰와 함께 가족을 넘어 용두리의 자랑거리다. 평범한 직장인인 줄 알았던 ‘홍해인’을 책임지겠다고 했으나, 나중에 재벌가인 것을 알고도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인물이 틀림없다. 그가 단순히 성공과 명예에 관심이 있는 인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진심으로 ‘홍해인’이라는 사람을 사랑했지만 유산을 겪고도 함께 아픔을 나누지 않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기 멋대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습관이 베인 그녀를 견디기 힘들어졌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해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것은 백현우 자신도 힘들어서였을 거라 짐작된다. 

   그런 그들에게 다시 한번 서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3개월 남았습니다.”

   홍해인에게 시한부 인생이 벌어진 것이다. 재력이 있으니 치료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둘이서 갔던 여행지의 추억과 사랑을 떠올린다. 서로에게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이혼을 결심한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현우는 해인의 남은 생까지 그녀를 보살핀다고 다짐한다. 그런 현우의 태도에 해인은 진심을 느끼고 감사해한다. 부부의 동상이몽이지만, 그 결과는 다시 그 둘의 사랑을 확인하고 전과는 다르게 진실한 속마음을 터놓게 된다. 

   사랑, 그 너머 결혼의 시작은 자신을 잘 아는 것부터다. 나를 알고 자신과 맞는 상대를 만나는 것.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될 수 있으나 그 관계가 오래가려면 각자의 성향을 조율해 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해인이 재벌가답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가업을 잇기 위한 도구로 결혼을 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해인이 더욱더 마음을 닫았을 것이고 치료를 받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았다고 해도 부부와 가정의 정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비록 치료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었지만 자신이 써놓은 수첩을 보면서 현우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끼는 것을 보면 몸으로 체득한 것은 각인된다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현우네 가족을 보면서 가정의 끈끈한 정을 느끼고 해인과 엄마와의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 안고 우는 장면, 그리고 인생의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온 현우가 해인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했다. 

   ‘사는 게 뭐 있어?’ 무심코 흔하게 하는 말이다. 무언가 특별한 게 아니라 사소하지만 놓치기 쉬운 것들을 잘 엮어가며 사는 게 살아가는 일 같다. 대단한 진리가 보물 찾기처럼 숨어있는 게 아니라 손만 닿으면 있는 곳에 널렸는데도, 스스로가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잠시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 내 주변에 있는지, 내가 또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깨닫는 순간 인생이 달라지리라 믿는다.

   제법 수목이 푸릇해졌다. 낙엽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면 수분과 햇빛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싱그럽고 탱글탱글한 잎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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