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놈입니다

by 키로

뿌연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내 손등 위로 잽싸게 올라탔습니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심장이 멎었습니다.

뱀이 벗어던진 허물처럼 삐쩍 말라버린 내손등에서 당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탄력 있고 생기가 돌던 당신의 고운 손이 가뭄의 논바닥처럼 삐쩍 마르고 거칠어진 것을 여태껏 생각지도 못하고 있어서 더욱 놀랐습니다.

그저 당신이 항상 그 자리에서 따뜻하고 고운 손을 가지고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신 또한 당신의 모습에 나 만큼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언제 이렇게 늙었지!"

"........."

당신도 처럼 이렇게 툭하고 내뱉었겠지요.

얼마나 허무하고 속상했을까요!

고된 세월이 당신의 삶에 밭을 갈듯, 한 고랑 또 한 고랑 주름을 늘렸지만 당신은 무던했습니다.

그 힘든 삶이 나이테처럼 몸과 맘에 새겨져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껏 그 삶에 천천히 녹아들었다는 것을 당신도 어느 순간 알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단지 시간에 순응했고 삶에 길들여졌을 뿐이었습니다.

그게 이제야 얼마나 속절없고 허무하고 가슴 아팠을지 알겠습니다.

지금껏 당신들과 다르다고 여겼나 봅니다.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티브이 앞에서 먼지 가득한 방바닥을 뒹굴거리며 나의 헛된 세월만 탓한 한심한 놈이었나 봅니다.

내게는 그런 속절없는 시간들이 비껴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아님 아예 오지도 안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둔한 건지 아니면 당신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내 것과 다를 것이라고 여긴 건지도 모릅니다.

냉정하고 무심한 나였습니다.

연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손이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한 것에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는 게 더 크게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나는 인정머리 없게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아픔은 당연하고 난 아프면 안 된다고 몸부림치며 부정하고 있습니다.

날 낳아서 길러준 그 손이었다고 생각하면 아파해도 골백번 아파했어야 했고 속절없는 세월을 탓하며 밤을 새워서 울고 또 울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나 자신이 놀랍고 두렵습니다.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세차게 후려치며 큰소리로 꾸짖습니다.

"이런 썩을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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