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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Feb 21. 2024

순대로 대동단결

닭발, 곱창, 대창, 선지, 족발, 오돌뼈, 돼지껍데기, 골뱅이, 번데기, 멍게, 해삼, 장어, 해물탕... 

이 음식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는 분? 


돌도 씹어 먹을 것 같고, 떨어진 음식도 3초 안에 주우면 괜찮다고 툭툭 털고 먹게 생겼지만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가리는 음식이 많다. 알레르기 같은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호불호의 탓인지라 “너 이거 안 먹으면 죽어!” 했을 때는 먹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저런 상황이 아니고서야 스스로의 의지로는 절대 먹지 않는 음식들이다.


그런데 스무 살까지만 해도 여기에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순대!

학교 근처 ‘철이네 떡볶이’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은 VVIP였지만 떡볶이와 튀김만 먹었을 뿐, 단 한 번도 순대를 사 먹은 적은 없었다. 이상한 껍질 같은 것에 둘러싸인 시커먼 음식. 그게 대학교 1학년 첫 축제까지 내가 순대를 보며 한 생각이었다. 



‘대학생 되면 해봐야지’하며 수험생 시절에 꽉 채운 버킷리스트대로, 꿈 많은 신입생이 호기롭게 가입한 동아리는 기가 엄청나게 센 최강 언니들이 꽉 잡고 있었다.

특히나 ‘김여인’(몰래 흉을 봐야 하는데 혹시라도 이름 부르다 들킬까 봐 우리끼리 몰래 부르던 별명이었다)으로 불리던 부회장 언니는 신입생들이 연애라도 할까 봐 성별을 나눠 활동시키고 여학우들만 차별하던 폭군이었다. ‘김여인’ 때문에 울면서 동아리를 그만둔 친구들도 여럿. 어쩌다 보니 같은 과 친구들을 꼬드겨 동아리에 들어온 나는 우리 기수의 부회장까지 맡는 바람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억지로 ‘김여인’ 치하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대학 생활의 꽃’인 축제가 다가왔다. 동아리의 1년 활동비가 걸린 행사인 만큼, 우리 동아리는 돈을 쓸어 모으리라는 각오로 일일주점을 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호객하고, 손님들한테 서빙하고, 조리도구를 설거지하고, 수시로 쓰레기 치우는 궂은일은 다 신입생들에게 맡기고, 선배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요리와 다른 학교 친선 동아리 회원들이 오면 맞이하는 일만 해서 우리 기수의 불만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었다. 


밥도 우리는 부치다가 찢어진 전, 반죽해 놓은 거 다 쓰고 마지막에 남아 건더기는 없이 밀가루 비율만 70%인 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딴짓하다 태워먹은 전. 그런 ‘전. 전. 전’으로만 주고 선배들은 골뱅이 소면이나, 두부김치, 떡볶이 등 골고루 만들어 먹었다. 쭈그리고 앉아 전을 뒤집던 민또(민OO 또라이의 줄임말)가 성질도 뒤집으려던 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여인’의 남자친구가 있던 다른 학교 동아리 회원들이 단체로 왔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주점을 맡기고 잠깐 축제 구경 한다고 하며 다 같이 가버렸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칼을 잡을 기회가 왔다! 도시로 유학 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하며 온갖 요리를 섭렵했던 친구가 비장한 표정으로 웍을 잡았다. 반죽 농도를 잘 맞춘다며 간택되어 반죽 통만 이틀을 잡고 살던 그녀는 그동안의 한이라도 풀듯 현란한 칼질로 요리를 시작했다.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순대볶음은 싹 다 잊게 해 줄 요리를 해주마!”

‘순대볶음? 나 순대볶음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하지만 이미 삼시세끼 전만 먹어 기름으로 느글거리던 위장은 맛있게 매콤한 순대볶음의 향기를 맡자마자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럼 일단 한 개만 먹어보자.’ 양배추와 깻잎으로 잘 싼 순대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그다음 기억은 없다. 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는 줄 그때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상황에서 언제 선배들이 돌아올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친구들과 치열하게 먹어치운 순대볶음의 그 맛!

‘요리왕 비룡’이 왔다 해도 그것보다 맛있는 순대볶음은 만들 수 없었을 것 같고, 몇 십 년 전통의 순대 장인이 와도 그 맛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아무리 유명한 순대볶음 맛집들을 다녀봤어도, 순대볶음을 처음 맛봤던 그때만큼 맛있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맛집표 순대볶음에는 없는 ‘허기’와 ‘울분’이 조미료가 되어 주었던 탓이리라. 


 반항의 순대 볶음으로 하나 된 우리들은 축제가 끝난 후 나란히 손잡고 동아리를 탈퇴했다. 우리의 피와 땀이 담긴 일일주점 수익금을 그들만 누리는 것이 싫었지만 ‘김여인’의 노비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가끔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김여인’과 선배들을 안주삼아 순대볶음을 만들어 먹던 것은 이제 옛날 얘기지만, 지금도 순대를 보면 그때 같이 고생하며 울고 웃던 그녀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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