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살이 에피소드
토토로 언니에게.
이제 미국 여행길로 들어섰다는 언니의 여행 소식을 들으니, 어마어마한 거리의 로드트립을 잘 해내는 언니네 기동력이 무척이나 부러워요. 우리 가족도 10월엔 14시간 거리 도시로의 로드트립 계획을 세웠는데, 아직도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지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아 겁부터 먹고 있답니다.
그래도, 이번에 8시간 거리를 달려 우리집에 오신 손님 이야기에, 언니 가족 이야기를 들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기기도 해요.
이번주에 우리집에 놀러오신 가족은, 남편과 함께 공부를 하셨던 형님 가족이셨어요.
남편이 공부하던 시절, 삼형제라며 함께 친하게 지내고 같이 다니던 형님들이 계셨는데 그 중 한 가족이었지요.
오클라호마에 연수차 오신 지 한달도 안셨고, 다같이 달라스에서 만날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우리집까지 달려와 주셨어요.
여덟시간. 저로서는 아직도 상상이 잘 안되는 거리인데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셔서는, 얼마 안되던데요. 하셨지요.
알고보니 오클라호마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LA까지 로드트립으로 다녀오셨더라구요. LA에 다녀오고 나니 여기까지는 금세 오더라는거에요. ^^
그렇게 중학교 2학년짜리 딸과 함께, 세 가족이 저희와 3박 4일을 함께 보냈답니다.
북적북적,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함께 지내니 언니네 밴쿠버 집에서 지내던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가족은 7~8 전즈음, 그러니까 신혼초에 몇 번 만났었고, 신혼집에 초대도 했었는데 그 이후로 가족끼리 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어요.
저에겐 철없던 20대시절 말 실수를 했던, 죄송스러운 사건이 있어서 그 죄를 만회하려 더 열심히 식사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어떤 실수였냐구요.
조금 부끄럽지만 얘기해보자면,
그 댁의 중2짜리 따님이 일곱살이었을 때였던가, 삼형제네 가족이 함께 1박 2일 여행을 떠난 자리였던 것 같아요.
한 집은 3남매, 이 집은 외동딸,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 아이가 없던 때였죠.
저는 삼남매를 두신 분께 무척이나 존경한다고, 저도 기회만(?) 된다면 서넛 낳고 싶다고 얘기했었고
외동딸을 두신 분께서 외동도 나쁘지 않다 하셨을 때, 그래도 둘 이상인게 아이들에게 좋지 않냐고 천진난만하게 말했지요.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재빨리 화제는 다른 곳으로 넘어갔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사과할 타이밍도 못찾고 넘어가고 말았어요.
그 때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고 남편에게 얘기하고 한동안 혼자서 민망하고 죄송해했지만 이후론 가족끼리 만날 기회가 없어서 만회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둘째를 고민할때마다 그 때 했던 그 실수가 자꾸 떠오르곤 하더라구요.
더군다나, 저도 첫째를 외동으로 6년 키우다보니 더더욱 마음에 걸렸지요.
그러고보면, 아이를 낳기 전엔 잘 보이지 않았던 매너, 센스 없었던 내 자신의 과오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떠오르는 경우가 참 많네요.
사촌언니가 큰조카를 낳았을 때 내복 한 벌 사가지 못했던 것도 그랬고,
아직 누워만 있던 조카에게 뽀뽀를 했던 것도 그랬고....
내가 겪지 않은 상황들도 센스있게 짐작해서 예의를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저라는 사람은, 센스가 참 부족해서, 겪어봐야만 겨우 터득하게 되나봅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멀리까지 와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오신지 얼마 안되어 시골마을에서 자급자족하시느라 이것저것 불편하고 힘드실텐데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대접했어요.
더운 여름인데다 식구들이 열심히 요리한다고 더 잘먹지 않아서 대충대충 해먹고 살았었는데,
손님이 오신 참에 먹고싶던 김치찜도 푸욱 끓여내고,
오븐에 각종 구이들도 구워냈지요.
아침엔 시래기 된장국도 끓여냈다가,
마늘빵이며 페스토빵도 구워냈다가,
마지막날 저녁엔 오뎅탕이랑 닭갈비도 했지요.
손님들이 너무너무 잘드셔서 힘든만큼 저도 무척 뿌듯하고 기뻤어요.
집이라 편하게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좋았고,
집이 북적북적해지니 늘 심심해하던 아이들이 신나서 흥분하는 것도 좋았고,
늘 우리 가족만 가던 바닷가를, 함께 가서 즐기는 것도 좋았어요.
그렇게 북적북적 하다가 오늘 아침 손님들이 가고 나니
허전하고 휑한 마음에 언니네 가족들이 우리집으로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스물네시간을 달려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우리 동네까지 오는 건 어렵고,
부디 옐로스톤에서도 멋진 풍경들 우리 대신, 아니, 우리에 앞서서 많이 보기를 기도할 수밖에요.
손님이 가시고 나니 이제 아이 방학이 딱 일주일 남았어요.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3개월간의 긴 여름방학,
남편이 휴가도 쓸 수 없어 징~ 하게 집에만 있던 방학이 드디어 끝나려나봅니다.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매일 도시락을 싸고, 매일 픽업을 하러 가는 일과가 시작되겠고,
그만큼 제 자유시간이 늘어나 책 읽을 시간도, 사람들 만날 시간도 생기겠죠.
그렇게 여유가 생기면 저는 또, 문득 문득, 5분만에 만날 수 있었던, 이제 언니가 곧 돌아가게 될
도쿄의 우리 동네가 아련히 떠오르겠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가끔 런치를 함께 했던 동네 도서관도,
아이들이랑 모기에 뜯겨가며 피크닉을 즐겼던 말 사육장도,
아이들 떼놓고 나와 쇼핑하던 이세탄도, 마루이도,
한밤중의 사이제리아와 이자카야도...
시간이 참 빨라요.
우리가 30대에 막 들어서던 시기에 만나, 30대 중반이 되었듯,
Q군이 딱 지금의 하루만할 때 우리가 처음 만났는데
Q군은 벌써 그맘때의 포도보다도 더 큰 어린이로 폭풍성장했고,
언니가 도쿄를 떠난 게 작년 이맘때였는데,
언니가 없어 허전해할 새도 없이 밴쿠버에서 우리가 만났었죠.
도쿄와 헤어져 아쉬울 새도 없이 이삿짐을 싸서 한국으로 가 출산을 했었고,
산후조리도 느긋하게 못하고 짐을 싸 이곳으로 왔고,
누워만 있던 아이가 이젠 물건을 잡고 벌떡벌떡 일어서고,
눈 깜짝할 새 여기서 저기로 순간이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언젠가 또, 지금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 땐 그랬지, 하고 수다 떨 날이 허락되겠죠?
그 날을 바라며, 또 하루를 열심히 견디고, 채워봅니다.
여행의 끝날까지, 부디 온 가족 몸 건강하기를!
미국에서,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