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살이 에피소드
토토로 언니에게.
도쿄에선 종종 언니와 함께하는 포스팅을 했는데, 여기서는 언니에게 띄우는 편지를 쓰다 보니
토토로 언니가 누구인지 새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누군가에게, 언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언니는, 누군가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언니가 도쿄에서 유학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공부를 한 이야기를 하면 언니가 설명이 될까요.
내가 서울에서 일을 하고, 도쿄 생활을 하다 미국에 와 있다고 하면 제가 설명이 될까요.
혹은 우리가 여행한 장소들을 이야기하면 우리가 설명이 될까요.
제가 살게 된 이곳 텍사스가 어떤 곳인지, 휴스턴이 어떤 도시인지는 또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미국에서 4번째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고,
한인마트가 어어엄- 청 커서 한국물건 사는데 불편함이 없지만 맛있는 한인식당은 별로 없다고,
석유산업과 관련이 깊어 유가에 따라 사람들 일자리가 위협을 받기도 한다고,
혹은 80%를 웃도는 습도에, 40도를 찍는 더위가 이어진다고
아니면 히스패닉 인구가 절반정도 된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진, 저도 그런 이야기만 듣고 이곳에 대해 어림짐작할 뿐이었어요.
하지만 여기 와서 느끼는 건 이 도시에 대한 느낌은 결국 여기서 만난 사람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어요.
며칠전엔, 오클라호마에서 오신 가족들과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에 갔어요.
기대 이상으로 우리 동네엔 외식할 곳이 많지만, 하루 때문에 레스토랑에 잘 가진 않아서 이제까지 패스트 푸드 빼고는 외식한 게 열 번도 채 못 될 거에요.
시골길을 지나 찾아둔 레스토랑으로 가면서, yelp평점은 좋은데 시골 허름한 레스토랑이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레스토랑은 그 동네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었지요.
금세 불안이 안심으로 바뀌고 기분 좋게 식당에 들어갔어요. 식당 입구에서 기다려도 종업원이 빨리 나와 안내를 해주지 않았고, 한참 후에 종업원이 나와서 여섯명에 아기 하나가 더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종업원 둘이서 한참 자리를 놓고 생각하다, 안에 들어갔다 왔다 하며 시간을 끌었어요. 혹시 만석이라 자리가 잘 없는건가 불안했는데 막상 안내받아 들어가보니 우리가 배정받은 넓은 구역엔 딱 한팀만이 더 있을 뿐이었어요.
담당 서버가 왔는데, 무표정하게 이야기를 해서 이 레스토랑 직원들이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구나 하고 서비스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맛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죠.
그러다 어쩌다보니 나이 지긋하시고, 배가 넉넉히 나오신 할아버지로 담당서버가 바뀌었는데
주문을 받는 것부터, 시종일관 미소지으며 대하는 것, 아이에게 미소로 말을 거는 것, 물 하나 하나 놓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점이 없을만큼, 정말로 편안하고 다정한 서비스를 베풀어 주셨어요.
마치, 내가,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이제와 이야기하자니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친절한게 뭐 별거라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 때, 그 장소에서, 그 종업원의 태도는 제 마음을 만지고, 위로하는 것처럼 무척이나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이 곳에 와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약간의 피해의식을 느끼며 조금은 경직된 마음이던 저에게,
그 할아버지의 태도가 무척이나 고맙고 따뜻했어요.
베이글을 사러 갔다가 영어를 못알아듣는다고 무시당하던 날,
트레이더조 슈퍼마켓 종업원 할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듯,
차도녀스러운 백인 학부모들에겐 말 붙이기 무서웠는데, 미국교회 백인 아줌마들의 환한 미소가 너무나 따스했듯,
여기 와서 겪은 비주류 동양인을 묘하게 무시하는 시선들은 다 거짓이고 오해라고, 이 할아버지가 말해주는 것 같았달까요.
이방인에게 담이 높은 이 도시라지만, 여전히 다정한 '낯선사람'은 존재한다는 것이 저에겐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답니다.
오늘은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왔어요.
소문도 좋은데다 친절하셨던 선생님, 보고싶던 반가운 사람들들 뿐 아니라
그다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웃으며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학부모의 입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누가 날 어떻게 대하든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내 몫을 하리라 단단하게 결심해야 했지만,
이상한 사람이 백명이라도,
나와 잘 맞고 나에게 따스한 사람,
내가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
그 한 사람만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속해 있는 이 곳이 그리 낯설거나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곧 나도,
이 도시가 참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조금씩, 좋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고
그들이 내게, 그 한 사람이 되어줄 것만 같거든요.
나도 그들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요.
언니가 도쿄에서
내게 그랬듯이.
미국에서,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