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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Nov 06. 2023

이토록 좋은 착각이라면

문득 내가 어떤 걸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는구나' 속으로 감지될 때가 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한 후에 주차장으로 뛰어갈 때가 그랬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전력질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아 나 진짜 빨리 읽고 싶구나.' 생각했다.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감정이 툭 올라올 때, 알고 있는 감정을 다시 한번 크게 느끼는 기분이 든다. 그런 순간들을 기록했다. 




도서관에 가는 길이 즐거울 때도 그랬다. 읽고 싶은 책을 빨리 대출하고 싶다. 도착해서 검색대로 곧장 가서 관심도서로 저장한 리스트의 책들을 하나씩 검색한다. 위치를 출력하고 책들을 금세 찾는다. 내가 빌리기로 한 지정도서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빌려야 하는 책 옆에 꽂혀있는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대출하려는 목록과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 빌리고 싶지만 대출권수는 한정되어 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드니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책을 주로 언제 읽는지 질문을 받을 때도 그랬다. 힘들 때, 좋을 때, 심심할 때, 안 심심할 때 독서를 한다. 생각보해 보니 주로 읽는 때가 딱히 있지 않고 어느 때든 계속 읽고 있었다. 먼 길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약속시간이 늦는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캠핑을 가서 휴식을 취할 때도, 잠들기 전에도 읽었다. 주로 읽는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늘 읽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읽고 나서 그 책을 읽은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독서모임에 참여할 때도 그랬다. 그 먼 거리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 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저 그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이 컸다. 물론 3시간에 걸친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면 그때서야 집에 언제 가나 싶었다. 독서에 대한 순수했던 열정을 돌아보니 '아 생각보다 더 많이...'  




누군가 이 책 너무 좋다며 추천할 때도 그랬다. 내가 가장 솔깃하는 추천은 책 추천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의 마음처럼, 그 책에 대해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없던 흥미도 생기는 것 같다. 한 번 읽어봐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쌓아둔 책들이 정말 많다. 지금은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다 차서 넣지도 못한다. 요즘은 하트로 찜을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이사 와서 가장 좋은 점을 집 주변에 큰 서점이 있다는 점을 꼽을 때도 그랬다. 서점이 10분 이내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이전 집은 탄천이 코 앞이라 운동하고 산책하기에는 정말 좋았지만 서점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온라인 서점에서 아이쇼핑을 하면서 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점에 들러서 다양한 책들을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재미가 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의류 브랜드에 들어가서 옷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책 표지 구경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참고로 나는 옷을 책만큼 좋아한다) 이런 나를 보며 '아 생각보다 더 많이...'




그저 재밌어서 읽고 있을 때도 그랬다. 독서로 결과를 내는 길은 빠르지 않다. 당장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달라지는 결과물은 없다. 오히려 쓸모가 있나 싶을 정도로 느린 행위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바라고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읽는 것이 좋아서 읽을 뿐이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이 뭐 대단한 거라고 읽는 게 아니다. 그저 빠져들어 읽을 뿐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아 생각보다 더 많이...'




필사할 때도 그랬다. 읽고 나서 좋았던 문장들은 필사를 한다. 필사를 하면 그 내용들이 내 무의식에 흘러가 축적된다고 믿으니까. 결국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쓴 문장들은 나의 잠재의식에 잘 쌓였다가 온몸 세포 가득 퍼질 것이다. 좋은 생각들로 내 머릿속이 가득 차서 어떤 생각이 흘러나와도 나와 조화로운 생각들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생각의 힘을 믿는 나를 보며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읽으면서 '아ㅡ좋다'는 생각에 마음이 확연히 고요해질 때도 그랬다. 어떤 문장을 읽을 때 마음속에 화려한 감탄이 쏟아질 때가 있다. 너무 좋을 때는 그것을 터뜨리지 못하고 안으로 품게 된다. 독서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몰랐던 생각들을 하나씩 마주칠 때마다 안심하고 감사하다. 읽지 않았다면 너무 늦게 알아차리거나, 끝끝내 몰랐겠구나 싶은 마음도 있다. 이럴 때도 나는 '아 생각보다 더 많이...' 




밑줄 친 문장들을 살아내고 있을 때도 그랬다. 힘들 때 기운 없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다잡으니 괜찮아질 때가 많아졌다. 힘든 순간에 떠오르는 밑줄 친 문장들은 나에게 실제로 큰 힘이 되었다. 작가의 생각이나 등장인물의 단단함이 내 안에 어느새 스며들었을 때 읽을 가치는 정말 이로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의 끝없는 가치를 생각하니 '아 생각보다 더 많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가 책이라서 감사할 때도 그랬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게 책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책이라서 다행이었다.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알아가야 할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 세계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찌릿찌릿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을 읽으며 성찰할 수 있는 세계에 서 있을 수 있어 또 안심한다. 어른이 되면 알아서 나를 혼내주는 사람이 없다. 그때 책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읽고 스스로 깨우치기에 책만 한 게 없다. 그런 마음에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아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독서를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독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느 책의 문장이 떠오르니, 내가 좋아하는 게 책이라서 감사하다. 밑줄 친 문장과는 다르게 모순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날도 많겠지만 차츰차츰 그 문장들도 나에게 스며들어 살아내는 날들도 자주 마주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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