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서기 나는 못해.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동작을 보고 머리서기는 아직 넘볼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걸 어떻게 해?' 그때 난 욕심도 내지 못했다. '난 초보인데 저건 아니지.' 나는 돌핀 자세만 열심히 따라 했다.
#2 얼떨결에 시작해서 실패까지.
돌핀 자세만 따라 하던 어느 날, 요가 선생님이 내 방향으로 오신다. 나는 직감한다. '헛 나 아직 머리서기 할 준비가 안되었는데..' 나는 얼떨결에 돌핀에서 머리서기 동작으로 자세를 바꾼다. 나름대로 '읏차' 힘을 내서 동작을 만들고 싶지만 실패! 하나도 아깝지 않은 실패! 어쨌든 선생님 덕에 시도는 해봤다.
#3 시작이 반이라더니.
선생님이 동작을 봐주시지 않았다면 아직도 돌핀만 연습하고 있었을 나다. 머리서기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최대한 미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과 머리서기를 한 날을 기점으로 나도 머리서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잘 안 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냥 시도는 해보는 거다. '아 이렇게 수련이 시작되는구나...'
#4 하고 싶으니까 방법이 궁금해지네.
머리서기를 연습하니 잘하고 싶어졌다. 잘하고 싶어 지니까 방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튜브로 왕초보 머리서기 잘하는 법을 검색했다. 몇 개의 영상을 보고 나니, 자세가 잘못되었단 걸 알았다. 다리를 최대한 몸 쪽으로 끌고 와야 하는데 나는 몸과 한참 떨어진 위치에서 다리를 들려고 했으니, 될 턱이 있나. 제대로 된 방법을 가지고 왔지만 될 리가 없었다. 아직 연습량 부족 인정!
#5 처음 뒤로 넘어졌다.
유튜브 영상에서 설명한 대로 다리를 최대한 안쪽으로 가져오는 것까지는 성공. 연습하니까 또 여기까지는 잘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한쪽 다리를 접어 올린 후에 나머지 한 발도 같이 들어 올리는 게 정말 안 된다. '왜 안 되는 거지? 나머지 한쪽 다리를 툭 위로 올렸는데? 올렸는데? 어? 어?' 뒤로 툭 넘어졌다. 나도 놀라고 보고 있는 남편도 놀라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자세를 봐준다며 내 동작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뒤로 넘어갈 줄 몰랐던 내 표정이 찍혔는데 너무 웃겼다. 머리서기 하면서 처음 뒤로 넘어진 날이었다.
#6 넘어지기만 하네.
뒤로 넘어가는 걸 알았으니 아프면 안 되니까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연습했다. 한 번 뒤로 넘어가니 어떻게든 코어 힘을 붙잡고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한 발 한 발 위로 올리면서 최대한 버티자 했는데 속절없이 그냥 뒤로 퉁 넘어진다. '뭐지, 뭐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에 힘이 부족한 걸까. 아직 코어에 버틸 힘이 부족한 건가. 이건 뭐 그냥 두 발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 뒤로 넘어지기만 한다.
#7 이젠 넘어지는 게 무서워.
가끔씩 잘 못 떨어질 때 너무 아팠다. 한 번 아프게 뒤로 넘어가니 없던 두려움이 생겼다. 와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더니, 두 발을 올리지 못하겠다. 한 발을 먼저 올리고 나머지 발을 올릴 때 넘어질까 봐 발끝으로 매트를 계속 지탱하고 있다. 뒤로 떨어지지 않게 몸을 만드니 발이 위로 올라갈 리 없다. 앞으로만 몸이 흐른다. 아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배에 힘이 없다고 탓한다. 괜히 코어 운동을 하고 있다.
#8 진짜 할 수 있을까.
요가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머리서기 연습을 한다. 나는 이 동작을 하는 시간이 오면 '아 때가 왔구나.' 생각한다. 나 혼자 비장하다. 마음과는 달리 겁부터 난다. 넘어지면서 배워야 하는데 몸을 사리고 있다. 그때 옆에서 툭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넘어지는 게 두려운 나는 그 모습도 내심 부럽다. 이 구역 최고 겁쟁이는 나다. '나 진짜 할 수 있을까.'
#9 원장 선생님이 봐주시는 날.
원장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시는 날이 있다. 선생님은 머리서기 동작을 할 때, 적극적으로 봐주신다. 일단 내가 한 발까지만 올릴 수 있어서 동작 자체가 안되는데,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두발을 올린 상태를 만들어주신다. 만들어진 동작을 유지하게 하는 방식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자세만 유지하면 몸이 기억해서 내가 혼자 할 때도 그 동작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인 것 같다. 결과는? 손을 떼자마자 내 몸도 와르르 무너진다.
#10 이토록 느리게 가자.
계속 유지하는 상태를 수련했다. 원장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동작을 나는 유지만 하면 된다. 잘 안 되는 게 아니라 전혀 안된다.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몇 초간은 선생님이 몸을 잡아주시는데 내가 버틴 게 아니니 몸이 기억하지 못하고 손을 떼면 무너졌다. 변화는 아주 미세하게 있었다. 0.1초에서 0.3초로 0.5초로 0.7초로 지금은 1초대까지는 유지하는 것 같다. 허허. 부끄럽지 않다. 얼마나 열심히 버틴 건데... 나의 목표는 3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머리서기 완성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의 목표는 3초에 집중하는 것이다. 3초만 돼도 진짜 행복할 것 같다.
#11 꺾이지 않는 마음!
오기가 생긴다. 안되니까 꼭 해보고 싶다. 단순히 머리서기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안 돼도 노력했더니 결국 성공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너무 뿌듯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잘 안되니까 안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넘어질까 봐 두렵긴 해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한 달 안에 안되면 두 달을 들이리라. 두 달 안에 안되면 삼 개월을 하면 되지. 육 개월 동안 안되면 1년이면 되지 않을까. 포기만 안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해야지. 그러다 갑자기 성공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12 머리서기 하면서 깨닫는 인생.
요가는 삶을 닮았다. 일상은 큰 변화 없이 단조롭다. 그러다 가끔씩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게 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 균형감각은 일상을 잘 보냈을 때 생기는 힘이었다. 일상을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보내느냐에 따라서 중요한 순간에 좋은 생각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요가도 비슷하다. 매번 같은 동작을 수련하는 일이다. 수업 끝에는 머리서기 동작을 하는데, 중심 감각이 필요하다. 그 균형감각은 앞서하는 모든 동작을 하나하나 잘 수행했을 때 길러지는 것이다.
일상을 요가 동작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뻗는 손처럼 보낸다면, 인생에 큰 힘듦이 찾아와도 머리서기를 할 수 있는 무게중심의 힘이 생겨 다시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머리서기로 인생의 균형감각을 배운다. 뒤로 넘어지고 앞으로 쏟아져도 결국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