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Me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나는 생일이면 항상 기분이 좋다. 전날부터 좋다. 생일이 무척 반갑다. 바깥으로 떠들썩하게 티를 내지는 않지만 마음속은 촛불이 계속 켜져 있는 느낌이다. 생일을 하루 내내 만끽하고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생일을 느끼는 기분까지 나이 들고 싶지는 않다. 생일을 반가워하는 건, 아주 선택적인 일이니까.
난 왜 생일이 좋을까. 지나가는 곳마다 반가운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일단 자주 들여다보는 휴대폰의 생일 날짜가 반갑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의 인사도 반갑다. 남편이 손수 끓여준 소고기뭇국도 반갑다. (내가 갑상선이 안 좋아서 미역국 대신 소고기뭇국을 끓여준다) 일을 하면서도 일상 속 들어오는 풍경들도 반갑다. 생일에는 무엇을 만나도 기쁘다. 내가 반갑게 생각하기로 선택하면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기쁠 거야.'
생일 당일은 남편도 나도 일이 많아서, 생일 전야제를 했다. 남편은 하루 휴가를 쓰고 우린 서울 데이트를 했다. 오전에 운동을 다녀와서 가볍게 아점을 하고, 미리 예약해 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로 출발!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영상을 감상했다. 그 후에 잠실 런던베이글을 먹으러 갔다. 전에 주말에 갔을 땐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지나쳤는데 평일에 오니 포장은 40분 정도 걸렸다. 평소 맛집을 줄 서서 먹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런던베이글은 한 번쯤은 맛보고 싶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베이글 8개를 포장했다.
저녁 식사는 안심 스테이크와 크림 파스타.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편은 아니지만, 큰 고민이 있으면 가끔씩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 남편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내 생각을 전달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년에 바라는 게 있냐고 물었고 남편은 지금보다 회사 생활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말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부지런하고, 지금보다 더 어른스럽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운동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지금만큼만 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성장해서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나는 하나에 몰입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념일의 식사시간은 평소와 크게 다른 게 없어 보여도, 서로의 생각을 들어주며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스티커 사진을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냉장고 사진들을 볼 때마다 오늘을 흐뭇하게 들여다볼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생일이 뭐 별 건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난 별거인 날로 잘 보내려 한다. 내 생일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잘 보내는 시간 안에는 하루 종일 행복이 있으니, 생일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것이다. 잘 보낸 하루는 1년을 잘 지내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생일이 올 때마다 아주 반갑게 맞이할 예정이다.
생일에 마음 써주는 사람들 덕분에 기분이 하루종일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일 축하한다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남편, 좋은 하루를 선물해 주는 친구들의 따뜻한 말, 전화해서 생일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들까지.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생일에는 오고 가는 말이 좋아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진다. 말을 예쁘게 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생일을 기억해주고 축하해주는 그 마음에 따뜻해진다.
화려한 생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일의 하루가 좋다. 함께하는 사람과 여기서도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충분해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좋다. 생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는 날이 된다.
Happy Birthday to Me.
생일 축하해. 잘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