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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Nov 13. 2023

종이 다이어리로 돌아온 이유

몇 년 만에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해가 끝날 때쯤 미리 내년을 대비해서 다이어리를 사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어차피 끝까지 다 쓰지도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휴대폰 어플 달력을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이어리를 꼭 써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벌써 N년이 흘렀다. 그런데 다시 다이어리를 사고 싶어졌다.




다이어리를 구매할 마음이 없을 때는 '사서 뭐 해, 또 앞장만 엄청 쓰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다소 시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다시 쓰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고, 꼭 해야 할 것들이 있어 계획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기록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건 좋은 시그널이다. 그래서 나의 계획을 이뤄 줄 도구로서 잘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구매의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조금씩 바뀌듯이, 나에게 맞는 도구 역시 달라진다. 휴대폰에도 좋은 어플이 많다. 지금 쓰고 있는 네이버와 구글 캘린더도 충분히 잘 써왔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잘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어플은 보조 도구로서, 종이 다이어리는 메인 도구로서 사용할 계획이다.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손으로 쓸 수 있는 다이어리이기 때문이다. 휴대폰 캘린더는 계획을 적고 확인하기에는 편리한 수단이다. 하지만 계획과 더불어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에는 다이어리가 더 잘 맞는다. 가벼운 계획은 지금처럼 어플에 기록하고, 다이어리는 조금 더 확장된 버전으로 생각을 담는 기록노트가 될 것 같다.




종이 다이어리가 꼭 필요했다. 손으로 직접 쓰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전자기기는 빠르게 터치하고 빠르게 넘기고 빠르게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전자기기를 킨 상태에서 오랫동안 생각을 하는 일은 편안함이 덜하다. 전자기기는 쓰다가 생각을 깊게 오래 할 때, 화면을 꺼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쓰고 생각할 때마다,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하기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는 전자기기 보다 아날로그가 더 잘 맞다. 생각하는 타이밍에는 종이 다이어리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종이에 기록하고 생각할 때는 하나의 동작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종이와 기록하고 생각하는 나만 있는 것 같아서 집중이 잘 된다. 나는 더 나은 몰입을 위해서 종이 다이어리가 필요하다.




종이 다이어리의 이점은 또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전체적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월 페이지를 보면서 이번 달 했던 것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나의 한 달 히스토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스토리를 인지하는 일이다. 그랬을 때, 다음 달 나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게 그림 그릴 수 있다. 일별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서 내가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는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하루를,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종합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나라는 사람을 일별로, 한 달 별로 작게 크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깊게 크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패턴을 읽을 수 있다. 나를 더 이해하고 인지하게 되면서 계획할 수 있다. 12월이 되면 1년 동안의 나라는 사람을 행동과 생각을 보다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나의 숲과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종이 다이어리의 기록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종이 다이어리는 페이지가 아무리 많아도 앞서 썼던 기록 중에 찾고 싶은 내용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손으로 썼던 기억이 남아 이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쯤 어딘가에 있다. 물론 어플 달력에서는 찾고자 하는 내용을 확인할 때 해당 단어를 검색하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전에 썼던 내용들은 잘 보지 않게 된다는 점이 아쉽다. 나의 스토리 전체를 조망할 수 없게 되니까.  




며칠 전부터 눈여겨봤던 다이어리가 있다. 와인 색도 예쁘지만 이미 품절돼서 고급스러운 브라운 색을 선택했다. 결제도 마쳤다. 다이어리를 몇 년 만에 만나는 어떤 황홀함이 있다. 내년을 책임지는 다이어리를 처음 만날 때 느껴지는 설렘 같은 것이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빨리 택배가 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이어리는 내가 매일 보고 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영향을 주는 물건이 되겠지. 그만큼 좋은 생각을 기록해야겠다. 나를 이기는 습관들을 만들어 나가야지. 나의 계획들을 품어줄 종이 다이어리,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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