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톤 Nov 22. 2023

엄마 방을 청소하는 딸의 마음

요가를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와 어젯밤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어쩌다 한 번씩 배터리 충전을 못해서 반나절씩이나 연락이 안 되곤 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또 배터리가 나갔겠지 싶었다.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배터리가 말썽이었으니까.




한 시간의 요가 수업이 끝났다. 나는 사물함에서 옷을 챙겨 입고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엄마에게 온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폰은 꺼져있었다. 별일이야 없겠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슨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나는 1시간 거리의 엄마 집으로 갔다. 연락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엄마를 보고 오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엄마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 집에서 쓰러지신 건 아니겠지’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 순간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엄마를 부르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났다. 비밀번호도 모르겠고 어쩌지 싶다가 창문을 쓱 밀었더니 다행히 열려있었다.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후 집에 갔는데 열쇠가 없어 창문으로 들어갔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또 오버랩되었다. 도둑으로 오해받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방에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는지 선택받지 못한 옷들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언가를 찾다가 급하게 나간 흔적이 있었다. 서랍장에서 꺼낸 물건들을 차마 치우지 못하고 나간 듯했다. '휴대폰은 꺼져있고 집은 엉망이고.' 그때부터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랑 통화됐으니까 전화해 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엄마 어디야?

엄마: 휴대폰 고치러 삼성 서비스센터야.


나: 어젯밤부터 연락 안 된다고 해서..

엄마: (별일 아니라는 듯) 배터리 고장 났어.


나: 연락 안 받아서 엄마 집에 왔어.

엄마: (웃기다는 듯) 아 집에 왔다고?

나: 집에 언제 와?

엄마: 볼일 있어서 늦어.

나: 아 그럼 얼굴 못 보겠네.

엄마: (쿨하게) 응 ~


나: 근데 집에 도둑 든 줄 알았잖아.

엄마: (약간 민망한 듯) 급하게 나가느라.

나: 얼굴 못 본다고? 그럼 주말에 봐.

엄마: (전화 끊김) 뚜뚜뚜 - - -




엄마는 참 전화를 빨리 끊는다.. 내가 애가 탄 것에 비해 엄마는 상대적으로 쿨했다. 내가 걱정했다고 했을 때 엄마는 휴대폰 고치러 왔다며,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자니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엄마가 나 때문에 애 태우는 일이 많았겠고 그에 비해 나는 쿨했겠지. 엄마만 걱정하고 또 걱정했겠지. 나는 놀기 바빠 알아챌 틈도 없었겠고. 그런 면에서 좋은 의미로 이제 와서 공평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통화를 끊고 집에 가려고 현관문 신발장으로 갔다. 발걸음이 멈춰졌다. 엄마의 방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 방을 청소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침대 위에 있는 옷을 작은 방에 걸어놓았다. 쏟아진 물건들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여러 영양제들이 보였다.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버렸다. 책상 위에 책들을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엄마의 방을 청소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또 생각났다. '엄마는 수도 없이 내 어질러진 방을 치웠겠지.' 그땐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내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걸 난 당연하게 여겼을 거고. 한 번씩 책상 위에 놓아둔 것들 어디다 두었냐며 짜증을 냈겠지. 엄마는 잘 찾아보라고 했겠고 나는 분명히 거기 두었는데 엄마가 청소하다가 치운 거라고 열을 내며 화를 냈겠지. 다른 날 우연히 서랍을 열다가 그렇게 찾던 물건을 발견하고서 내가 고스란히 넣어두었단 걸 엄마한테는 끝끝내 말 안 했겠지. 그저 나 혼자 맙소사! 하고 지나갔겠지.




잘은 기억 안나도 그랬을 거다. 그땐 친구랑 노는 게 제일 즐거운 쾌활한 딸이었으니. 후. 그 생각이 나서, 내 눈에는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버리지 않았다. 대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모아두었다. 엄마의 물건이니까, 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니까.




엄마의 물건 중엔 유독 옷이 많았다. 텍이 붙어있는 옷이 꽤 있었다. 옷을 정리하다 나는 또 어린 시절이 기억났다. 나 역시 옷을 좋아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옷을 갈아입다가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부랴부랴 나갔겠다. 옷들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을 테고 계속 그랬겠지. 이제 보니 내가 옷을 좋아하는 게 엄마를 똑 닮았나 보다. 엄마의 정리안 된 옷을 보며, '아직도 엄마는 예쁜 옷을 입는 걸 좋아하는구나'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엄마 방을 청소하다가 엄마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간다. 아직 반의 반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엄마가 물건을 조금 줄였으면 좋겠다. 배터리 충전도 잘했으면 좋겠다. 잔소리는 만나서 해야겠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