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
뒤늦게 <나의 아저씨>를 봤는데, 몇 화였더라. 스님이 된 친구가 이선균한테 행복하게 살라고 하며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 별 거 아니라는 말, 다 지나간다는 말 한마디에 구겨진 마음이 펴지고 걱정이 스르륵 녹았던 적이 생각났다. 그런 적이 있었어.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는 무책임하다고 그 말을 싫어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당장 해결해야 하는 눈앞의 현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다시 이 말이 위로가 된다.
좋았던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고 울컥했던 순간이 있다. 노래를 듣거나 거리를 걷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고 벅찼던 마음들도 있다. 바로 이 장면처럼. 몰랐어도 그만인 것들인데, 내 인생에서 만나지 않았어도 아무 것도 아닐 일들인데, 민망하게도 이런 것들이 현실의 고민을 지워준다. 속는 셈치고 거기에 의지해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 순간의 감정이나 허황되고 뻔한 위로에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게 있다. 뛰어난 예술작품(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등)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는 걸 말하는데, 심하면 호흡곤란, 현기증처럼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삶의 목표처럼 되어버렸지만, 무탈한 인생을 방해하는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균열이다. 예술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늦은 밤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다음화를 재생하고 마는 드라마, 유튜브에서 발견한 열심히 사는 사람들(유튜브 '30대 자영업자 이야기' 강추), 모르고 지나쳤던 팝송을 누군가 해석해놓은 걸 봤을 때(유튜브 '기몽초' 강추. 얼마전엔 테일러 스위프트의 'anti-hero'를 들었다), 내 생각이 났다며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태그해준 한 줄 글귀. 나에겐 그런 것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동요는 금방 사라지지만, 담담해지지만... 내일의 할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왠지 모르게 해낼 힘이 생긴다.
앞으로의 일이나 지금의 걱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괜찮은 거였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야. 온종일 잡아두고 끙끙댈 필요가 없다. 그래도 되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