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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5. 2022

뒷골목 짬뽕집의 사정

앞골목에 칠천 원짜리 짬뽕이 뒷골목에서는 사천 원이다


뒷골목 짬뽕집의 사정


앞골목에 칠천 원짜리 짬뽕이

뒷골목에서는 사천 원이다

앞골목의 사정은 모르면서 뒷구멍으로 욕을 했다

앞으로는 뒤로만 가야지

씩씩거리며 주문한 짬뽕 위로

이천 원어치의 홍합이 탑처럼 쌓여 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다른 해물은 없어

그렇지 그러니까 사천 원이지 싶은데

그럼 천 원 비싼 해물짬뽕은 메뉴판에 왜 있겠냐고

깨지기 쉬운 껍질이 알려주었다


너희 나라에도 자장면이 있니

칼라가 땀에 전 신사가 물었고

앞에 앉은 청년들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받침이 다 허물어진 맛있다는 말이

조촐한 중국집을 이국으로 옮겨 놓은 한낮

비어가는 그릇 위엔 최고의 찬사만이 남았다

모두가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배를 채우는데

유일하게 마주 앉은 그들이 부러워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동냥 귀로 때우고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원아, 어제 내가 읽은 책에서

매운 짬뽕은 일반 짬뽕보다 오백 원 더 비싸서

여자애는 짬뽕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월급 십만 원을 올려 준대서

집에서 사십 분이 더 걸리는 곳으로 직장도 옮겼다


아줌마 짬뽕 맵게 돼요? 아주 맵게요

혹시 매운 짬뽕은 돈 더 받아요?

내가 방금 물어봤는데 그런 거 없대

미리 그 아이를 만났다면 알려줬을 텐데


가난도 모르는 게 울 줄만 안다고

원아, 네가 말했었지

사천 원 짜리 짬뽕 앞에서 궁상떠는 게 역겨워

어제 술집에서 내가 소화한 것들

텅 빈 극장에서 본 영화는 아직도 이해 못 했고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날 때는

먹기 싫은 케이크를 주문했어


매운 건 짬뽕인데 우는 건 나다

사천 원짜리 앞에서는 사천 원어치만 울고 싶다


원아, 가난은 언제쯤 내 것이 될까

가난은 언제쯤 내 것이 아닌 게 될까

그러면 거기에도

소원이 있고 영원이 있고 구원이 있는지

내가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될는지





오늘 점심을 먹으며 건강해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도 꼭 하고 바이러스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아야 한다. 어디는 문을 닫아도 되고, 어디는 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이러스가 생기고 나서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갈 곳을 잃었다고 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는 곳들이 더 이상 문을 닫으면 안 된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사천 원 짜리 짬뽕집. 나를 비롯해서 모두 혼자 온 손님이었는데 가운데 테이블에 중년 신사 한 명과 베트남 청년들이 마주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동네가 대학가라서, 처음에는 집 근처 대학교의 교환학생들과 교수님인 줄 알았다. 본의 아니게 귀동냥을 하다가, 함께 일하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사가 “너희 나라에도 짜장면이 있니” 물었고 열심히 음식을 먹던 직원들은 “잘 모르겠다”고,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짜장면도 먹고 짬뽕도 먹고 탕수육도 많이 먹어. 잘 먹으니까 다음에 또 오자”고 상사가 말했고 청년들은 “마싰어요” 하고 대답했다.


청년들이 가난해서 한국에 온 건지, 그래서 여기서 일하며 행복한지 아니면 괴롭고 힘든지 그런 사정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먼저 동정하는 건, 안녕을 바라는 건 나의 형편없는 마음이다. 그런 스스로는 싫지만, 가난한 내가 방문하는 곳들이 안전해야하는 건 사실이니까. 나도 다음에 또 거기에 가야 하니까. 모두가 또 거기에 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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