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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5. 2022

미용실에 고양이가 산다

머리는 고양이처럼 잘라주세요

미용실에 고양이가 산다



미용실에 고양이가 산다


어떻게 잘라 줄까요? 

미용사가 물어서

고양이처럼 잘라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머리를 안 감아도 감은 것처럼 보이게

매일 매일 내 머리를 만지고 싶게

만나는 사람마다 쓰다듬고 싶게


노력해볼게요

그래도 아마 고양이처럼은 안 될 거예요


싹둑싹둑 썰어대는 가위질처럼

미용사의 대답에는 단정한 매듭이 묶였다


외로움이 곤두선 털끝이 잘려 나가는 시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검고 깊고 검고

그 위를 고양이가 무심하게 밟고 지나간다


(고양이가 있네요?) 얘는 원래 집에서 키우던 녀석인데요 얼마 전에 집에서 쫓겨났어요 (왜요?) 제가 길에서 다른 고양이를 하나 주워왔거든요 나만 보면 계속 야옹야옹 우는데 그걸 모른 척 할 수가 있어야지 그럼 내가 키워야겠다 싶어서 집으로 데려왔는데요 그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아요 (어디가 아픈가?)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병이요? 병은 고쳤어요?) 아니 못 고쳤어요 따로 치료하는 방법이 없대요 (그럼 죽어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대요 그런데 이 병이 고양이끼리는 옮는대요 사람한텐 안 옮구 (아이고) 병 걸렸다고 다시 길에 갖다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집에 한 놈 미용실에 한 놈 이렇게 키우게 된 거예요 (어머, 대단하시다…) 내 정신 좀 봐 별 얘기를 다 하네 그럼 이제 샴푸할게요


머리를 감기며

미용사는 수건으로 내 두 눈을 가렸다

마지막 손님까지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고양이가 외로울지도 모르겠어요 했더니

글쎄요 호호호 그나저나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머리를 감겨본 적이 있었는데

손으로 느끼는 온도와 

머리로 느끼는 온도는 낮밤처럼 달라서 애를 먹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온도는 흔해도

딱 좋은 온도는 흔하지 않았던 시간들


글쎄요 호호호

외로움도 마찬가지여서

뜨거운 방향과 차가운 방향만 있잖아요

그럭저럭 괜찮은 외로움은 있었지만

외롭지 않은 순간은 없어서

내가 밤새 함께 있어 준다고

외롭지 않은 순간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제가 이 녀석들의 외로움에

일 그램의 무게라도 있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마도 고양이처럼은 안 될 거라고 했죠


고양이를 닮기에는

누군가는 너무 외로운 사람

두 눈을 가리면 금세 무서워지는 사람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고

털끝에 외로움이 가득 달리면

또 방문해주세요

그때는 더 바짝 잘라드릴게요






고양이는 다른 반려동물에 비해 외로움을 덜 탄다는 말을 들었다.그건 정말일까. 고양이들은 정말 외로움을 덜 타는 걸까. 동물을 키우고는 싶지만, 혼자 살아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키우라고 했다. 사람은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런 말을 내뱉어도 되는 걸까.


이 사람은 외로움을 더 타고 저 사람은 외로움을 덜 탄다는 사실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면죄부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처럼 머리를 잘라 달라 말할 용기가 나는 없지만 (그래서 그건 거짓말이지만) 잔인한 바이러스에 걸린 길냥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용기 있는 미용사는 존재한다. (그것도 우리 동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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