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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Nov 14. 2024

생존

해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


“엄마~ 나 방송 댄스 수업 갈래~~ 왜 오늘 못 가는 건 데에~~”

아이는 어제저녁부터 댄스 수업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 억울해서 한바탕 울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준비를 시작하자, 눈물까지 흘리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 끝에 아이의 지능, 주의력 검사와 종합 심리 평가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상담 센터는 예약이 이미 꽉 차 있었고, 내 스케줄에 맞춰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이의 주말 방과 후 수업을 결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퀴즈 풀러 가는 거야.”

간신히 아이를 달래니, “힝… 알았어…” 하고 마지못해 따라나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댄스 수업은 잊은 듯, 퀴즈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검사와 함께 오늘은 나와 상담사의 면담도 있었다. 질문들은 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환경과 나의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계획된 임신이었나요?”

상담사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짧게 대답하자, 상담사는 익숙하다는 듯 재빠르게 되물었다.

“어떤 상황이었나요?”

“저는 그때… 어…”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이 면담은 아이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짧은 시간이었기에, 그 복잡했던 상황을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거의 매일 싸우느라… 그런 걸 깊이 논의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싸워서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의견을 내기만 하면 남편은 싸움을 걸었고, 언제 아이를 가질지에 대한 논의는 늘 뒤로 미뤄졌다.


“우울증 같은 문제는 없으셨나요?”

“네, 있었어요… 병원에서 우울증 약을 한동안 먹었어요.”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멍해졌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상태였던가...

남편은 우리가 싸울 때마다 폭언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그저 화가 나서 잠깐 감정이 격해진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다혈질이니까, 서로 화를 내고 나면 곧 풀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고, 나를 향한 비난과 모욕은 싸움이 잦아질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의 말은 나를 무심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찢어발겼다. 단순한 욕설을 넘어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사소한 말다툼조차도 결국엔 조롱과 비웃음으로 마무리되었고, 나는 점점 더 내가 형편없고 역겨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그의 폭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정신병자”, “극혐이다”, “못 배워 먹은 인간아”, “개념도 없고 양심도 없는 인간.”

이 말들은 나를 괴롭혔다. 정말 내가 잘못된 사람일까? 남편의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정말 그렇게 부족한 인간일까?


회사의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상상,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목을 감는 상상, 계단을 오를 때 굴러 떨어지는 상상,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 상상, 칼로 손목을 긋는 상상… 그리고 범죄 기사에서 자신이 칼에 찔리는 상상을 했다.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갈수록 모든 것이 더 괴로워졌고, 결국 가장 마지막 방법만이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내 생각이 무서워져 병원에 갔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그 약은 내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중 또 남편과 다투게 되었고, 그는 다시 독설을 퍼부었다. 그날 나는 받은 약 봉투를 열 개쯤 더 찢어 한꺼번에 삼켰다. 코끝이 찡하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온몸이 무기력해졌다. ‘이대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 같은 위험한 결말은 아니다. 약은 나의 몸을 진정시키고 머릿속 모든 잡음을 잠재웠고, 난 꼼짝도 하기 싫은 나머지 긴 잠에 빠졌다가 개운하게 깨어난 것이다. 그제야 약의 효과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무렵, 친구가 러닝을 권했다. 기분이 상쾌해진다며 나에게도 해보라고 했다. 운동이라곤 숨 쉬기밖에 몰랐던 내가 과연 그 힘든 걸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힘든 것도 견디고 있는데, 그깟 달리기가 뭐 대수겠어.’

그렇게 마음먹고 집에 있던 운동화를 꺼내 신은 뒤, 친구가 추천한 초보자용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켜고 달리러 나갔다.

숨이 차올라 고통스러웠고,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목표 거리를 채우기 위해 그냥 달렸다. 머릿속엔 오직 내가 다음 숨을 들이마실 수 있을지,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지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내 머릿속이 비워지는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암릉 절벽 구간을 지날 때의 두려움과 짜릿함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발밑으로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손끝과 발끝으로만 바위에 몸을 지탱하는 순간,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나를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단 한순간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려움이 우리를 집어삼킨다고 생각하지만, 산에서는 오히려 그 두려움이 나를 생생하게 깨우는 힘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나의 생존을 넘어서, 내 삶을 끝까지 버텨내고 싶다는 나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임을,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살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막 해뜨기 전 그 칡흑같은 어둠과 추위 속에 떨다, 저 멀리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걸 보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우울증 상태이신가요?”

“아니요… 약은 어느 순간 다 버렸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야 나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단단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여전히 좋지 않은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나마저 무너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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