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의 햇살 Apr 03. 2024

때로는 어른에게도 칭찬이 필요하다.

말 한마디로 기분이 반전되는 마법

 언젠가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른이란, 누군가의 칭찬 없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말을 듣고 "와, 어른은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했을 때 주어지는 칭찬의 달콤함이 얼마나 원동력이 되는지 잘 알고 있던 나의 입장에서 어른들은 그런 달콤함 없이도 매일 성실히 일을 수행하는 성숙한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어른이 되어보니 그 말은 서글픔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조금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린 시절과 달리 어른은 자기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며,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장에서 막내의 위치에 있었을 때에는 조금만 열심히 하면 선배들로부터 "정말 열심히 한다, 잘한다!"와 같은 칭찬을 듣기가 쉬웠으나 이제 직장에서 부서원들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다 보니 칭찬을 들을 일도 줄어들었다. 부서장이 부서원들을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건 '아, 나는 아직 성숙한 어른이 아닌가?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좀 서글픈 일이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 언니 두 명이 항상 고맙다, 잘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주어서 마음에 온기를 가지며 일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직장 생활이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올해 우리 학년에는 퇴직하신 선배교사 두 분이 시간강사(기간제 교사)로 학년의 전담수업을 도와주러 오셨다. 키가 크고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은 일주일에 과학 한 시간을 맡아주시기로 하셨고, 아담한 체격에 밝은 기운이 넘치는 선생님은 도덕 한 시간을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두 분은 예전부터 친분이 두터워보였다.


 학년 부장을 맡은 나는 첫날부터 선배님들께 깍듯이 인사를 하고, 수업하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 여쭤보고, 쉬는 시간에는 목이 아프실 텐데 차 한 잔이라도 하시라며 챙겨드렸다. 30년 넘게 머물다가 퇴직하신 학교에 다시 돌아오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년 경험해 봐도 쉽지 않은 학교에 그렇게 오랜 기간을 근무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래포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학선생님께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와 옆반 언니 선생님을 보며 말씀하셨다.


 "근데, 자기들은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아? 아주 반짝반짝해~!"


 그 말씀에 갑자기 가슴에 반짝, 불빛이 켜지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피부가 너~무 좋으신걸요?"


 너스레를 떨며 내가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선생님들을 공손히 가리키며 화답하자, 옆에 계시던 도덕선생님께서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는 너~무 귀여워. 생긴 거나 하는 행동이 어쩜 이리 귀엽지?"


 그 순간, 아 내가 저 집 며느리가 됐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1초 정도? 사실 그 선생님이 아들이 있으신지 없으신지도 나는 모른다.)

 두 선배님들께 연이어 칭찬을 받은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져 그만 흥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살포시 두 손을 주먹을 쥐고 턱 아래 꽃받침을 만든 후 "어머 선생님~ 이르케 귀엽게 봐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요러면 더 귀여울까요?" 하면서 아양을 떨었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은 칭찬 없이도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칭찬을 받으면 더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다. 학교에서 내가 매일 우리 반 모든 아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단 한 마디라도 칭찬을 해주고 집에 보내는 이유는 이 날 내가 느낀 감정을 아이들도 매일 학교에서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도 어른도, 때로는 칭찬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인이 된 제자를 만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