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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Sep 01. 2022

싱어송라이터 남달리님에게 - 작은 동생, 양양이 이야기

8월 25일의 악필 편지

제 책상 위에는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빨간 공 하나가 있습니다. 공은 언제나 의자에 앉아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 곳에 놓여져 있지요. 며칠씩 눈길도 주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공을 서랍에 넣는 대신 항상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글을 쓰다 막힐 때, 지루할 때, 불안할때, 그도 아니면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저는 그 공을 만지작거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양양이의 이빨 자국을 더듬어 찾지요. 뾰족하게 패인 자국이 마침내 손끝에 닿을 때면, 저는 한숨 섞인 웃음을 지으며 공을 내려놓곤 합니다.


양양이는 제 동생입니다. 우리 가족과 10년을 함께 살았던 푸들이지요. 처음 양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조그만 솜뭉치가 기어다니는 것이 조그만 양 같아서 제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름 덕분이었는지 양양이는 정말 순했습니다. 껌딱지처럼 가족들의 몸에 꼭 붙어 자는 걸 좋아했지요. 어린 시절 저는 울보였던 제가 방문을 닫고 울고 있을 때도 양양이는 고집스럽게 껌딱지를 자처했습니다. 양양이는 방문을 열어줄 때까지 낑낑거리며 방문을 긁어대다가, 기어코 제 품에 기어들어오곤 했습니다.


우리가 양양이를 잘 키웠느냐면,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진 못했습니다. 유튜브가 강형욱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건 생각도 못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동물 학대라고 해도 될 만한 것을 우리는 무지하다는 이유로 곧잘 했습니다. 매운 것을 먹이면 연신 혀를 할짝이는 것이 귀여워서 마늘이 들어간 김치도 자주 먹였으니까요. 마늘이 개의 소화기관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양양이가 심하게 설사를 하다 우리 품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저는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양이가 가지고 놀던 공을 만지작거리거나, 방문에 여전히 남아있는 발톱자국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면, 저는 싱긋 웃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받았으니까요. 저는 울보였음에도 사랑받았습니다. 무지함에도 사랑받았습니다. 그 무지함이 동생의 수명을 갉아먹었음에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억들은 제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그 수많은 흠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요. 


최근엔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늑대 중에 유전적 결함이 있는 늑대들이 사람과 친해지며 개로 진화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결함이 사람에게 발생하면 누구든 광적으로 쉽게 믿고 따르는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이라는 유전병 환자가 된다고 합니다. 저와 달리님, 그리고 우리가 강아지라는 친구들에게 빚진 애정은 어쩌면 이 친구들의 아픔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아파할 수 있을까요. 저의 작은 동생, 양양이가 저에게 그랬듯이요.


심리상담은 아픔을 다루는 일이기도 합니다. 삶을 다루는 모든 것이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씩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제게는 글쓰기가, 달리님에게는 음악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겠지요. 제가 남은 여생 동안 제 동생을 잊을 일은 없을테니, 저도 그런 확신어린 애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는 계속 글을 쓰고 상담을 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애정, 그 애정의 힘으로요.






이번 편지는 남달리 님(@daleepiano)님께 받은 편지의 답장입니다. 흔쾌히 작업을 수락해주신 남달리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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