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적 일탈에 대해
영화 '레옹'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 : 12살 소녀 마틸다는 마약상 아버지와 새어머니 밑에서 방황하며 자랍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빼돌린 마약을 찾기 위해 부패한 경찰 스탠이 가족을 학살합니다. 마틸다는 이웃에 사는 레옹을 찾아가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다며 자신을 킬러로 키워달라고 요청합니다. 기묘한 동거를 이어가며 마틸다는 레옹을 사랑하게 되지만, 레옹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마틸다와의 동침을 거부합니다. 마틸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안 스탠은 마틸다와 레옹을 죽이려 하나, 레옹은 자신을 희생해 마틸다의 복수를 대신하게 됩니다. 레옹이 죽은 후 마틸다는 학교로 돌아가 교장에게 도움을 청하고, 레옹이 남긴 화분을 학교의 화단에 심습니다.
‘레옹’은 분명 아름다운 영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한 불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12살 소녀 마틸다의 섹스 어필입니다. 저렇게 어린 아이가 저렇게 야한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운다고요? 뿐만 아니라 마틸다는 이름도 몰랐던 옆집 아저씨였던 레옹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합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첫 경험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하지요.
다행히도(?) 레옹은 이런 마틸다의 추파를 잘 거절합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최후의 순간에는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지요. 영화에서는 마치 두 사람의 관계가 나이를 뛰어넘은 플라토닉 러브처럼 비춰집니다.
어떻게 두 사람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마틸다는 왜 레옹에게 반하고 추파를 던졌을까요? 레옹이 어리고 연약한 마틸다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두 사람의 이런 사랑,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요?
마틸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문제아입니다. 한국에 이런 중학생이 있었다면 분명 담임 선생님이 상담실로 끌고 왔겠지요. 야한 옷을 입고, 부모님 몰래 담배를 피워대며, 학교에는 2주나 무단으로 결석합니다. 그리고 40대는 될 것 같은 아저씨에게 섹스를 요구하기까지 하지요.
이런 비행을 마틸다의 탓이라고만 단정짓는 건 가혹한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의 문제에는 대개 환경의 영향이 뒤따릅니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걸핏하면 마틸다를 때려서 마틸다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증오합니다. 새어머니와 새누나 역시 마틸다에게 무관심하지요. 아이들이 집에 있는 대낮에 화장실에서 관계를 하려고 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썼을 것 같진 않습니다.
친구들은 어땠을까요? 마틸다의 친구들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마틸다가 이들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레옹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레옹과 첫 경험을 하고 싶다고 유혹할 때지요.
여자는 첫 경험이 중요하대요. (...) 어떤 친구들은 싫었다고 하던데, 상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기분으로 저지르거나. 담배도 처음엔 그렇잖아요. 첫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어요.
마틸다의 주변에는 이미 성 경험을 한 또래 친구들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충동적으로 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경험이라면 성폭력의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마틸다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제공하는 대신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지요. 학교에서는 너무 일찍 불행한 성 경험을 겪었던 친구들의 음담패설을 들었을 테고, 집에서는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부모의 성생활을 목격했을 겁니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성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나 따뜻한 애정과 관심 아래서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합니다. 마틸다 역시 자신이 경험한 애착 손실을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수단이 섹스 어필이었던 것이지요. 자기파괴적인 관계에 집착하는 여성들에게서 이와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과 온정이 너무도 절실한 사람이 타인의 관심을 끌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럴 때 여성에게 성이란 남성의 관심을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마틸다의 가슴이 파인 옷과 훤히 보이는 맨다리는 사실 이런 뜻이었을 겁니다. “누구든 나를 도와주세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나는 죽고 말 거예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제발,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실제로 마틸다는 몇 번이나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죽고 말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마틸다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마틸다가 첫 경험을 레옹과 하고 싶다고 말하자, 레옹은 ‘넌 너무 어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오래 묵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해주지요. 레옹의 첫 사랑은 좋은 집안의 여자였지만, 레옹은 글조차도 읽을 줄 몰랐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던 여자의 아버지는 여자를 쏴죽이고 말지요. 레옹은 그 복수로 여자의 아버지를 죽이고 미국으로 건너와 킬러 생활을 시작합니다.
일처리만 확실히 한다면 영화도 보고, 유유자적 화분을 키우며 여가를 보낼 수 있는 레옹의 킬러 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킬러가 되고 싶다는 마틸다를 만류하며 레옹은 이렇게 말하거든요.
사람을 한번 죽이게 되면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지, 영원히. 남은 평생 편안히 잠들 수 없을지도 몰라
이미 사람을 죽여 복수를 이룬 레옹은 자신의 남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틸다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겁니다. 불안에 떨며 잠조차 편히 잘 수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기에 레옹은 마틸다의 복수를 선뜻 도울 수 없었겠지요.
레옹은 ‘난 누굴 사랑할만한 사람이 못 돼’라고 말하며 마틸다를 거절합니다. 레옹이 마음을 걸어 잠그고 고독한 킬러가 된 마음의 뿌리에는 죄책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겠지요.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겁이 났을 겁니다.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그 사람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레옹은 따스한 체온 한 점 없는 냉혈한으로 살아갈 수 있는 킬러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겁니다.
사랑이 절실했던 두 사람의 행동이 이토록 달랐습니다. 마틸다는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바치려 했고, 레옹은 사랑을 다시 잃을까 두려워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레옹의 아주 작은 존중에서부터 이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순간을 봅시다.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마틸다는 계단 난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요. 아버지는 마틸다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혼내며 마틸다의 뺨을 때린 모양이었지만, 레옹은 담배에 대해 물어보기보다 마틸다의 얼굴에 왜 상처가 생겼는지를 물어봅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마틸다는 아버지에게 맞아 코피를 흘리며 계단 난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요.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는 레옹에게 마틸다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는 게 항상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킬러 레옹에게 열두 살 짜리 꼬마가 당돌하게 묻습니다. 어린 게 별 소리를 다 한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레옹은 마틸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무겁게 대답합니다.
항상 힘들지
그러자 마틸다는 레옹에게 우유가 필요하냐고 묻고, 활짝 웃으며 심부름을 자청합니다. 왜 마틸다는 웃었을까요? 자신의 절망과 고통을 레옹은 그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마틸다의 아버지가 응당 베풀었어야 하는 관심을 레옹은 작은 친절로 대신한 것이지요. 낯설지만, 그렇기에 마틸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친절이었습니다. 때문에 마틸다는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으로 주저없이 레옹을 선택했겠지요.
레옹에게도 마틸다를 보살피는 경험은 치유적이었습니다. 복수심에 눈이 먼 마틸다를 보듬는 일은 과거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한 마틸다를 보호하고 따스한 온정을 나누는 일은 과거 자신이 그래야 했던 여자친구를 지키지 못한 결핍을 채워주었겠지요. 마음을 닫고 공허한 일상을 보내던 레옹은 마틸다를 돌봄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찾고, 다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주저없이 자신을 희생합니다. 때문에 레옹은 총격전에서 마틸다를 홀로 피신시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난 안 죽어, 마틸다. 네 덕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절대 네가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레옹이 죽고 다시 홀로 남겨진 마틸다는 학교로 돌아갑니다. 교장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지요. 마틸다가 레옹이 남긴 화분을 학교 화단에 심는 모습은 마틸다가 이제 평범하고 건강한 삶으로의 정착을 용감하게 시도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용기는 누군가의 사랑을 거름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이제 마틸다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소아성애를 미화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영화이기에 사족을 덧붙입니다.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못합니다. 중년 레옹과 소녀 마틸다의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만큼이나 비현실적입니다. 마틸다 역으로 데뷔한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의 흥행 이후 수많은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지요.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다룬 것은 성적인 문제로 손가락질을 받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서입니다. 마틸다의 경우처럼, 어린 친구들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청소년의 일탈에는 자기파괴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학습하는 환경을 방조한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지요. 이들에게는 주변의 지탄이 아니라, 건강한 사랑과 자기존중을 학습할 수 있는 또다른 환경이 필요합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존중에서 출발합니다. 마틸다의 담배보다는 뺨의 상처를 눈여겨보았던 레옹의 관심으로 인해, 마틸다가 학교에서 뿌리내리기를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요.
이 글은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연애결혼'에 연재한 콘텐츠를 편집 및 재구성한 글입니다. 원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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