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화 Apr 08. 2024

 산책길에서 만난 동백꽃

                                                                 

 제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홍보기자단 위촉식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2~3시간 여유가 있어 근처에 있는 사라봉에 산책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 사라봉 중턱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발밑에 떨어진 동백꽃에 시선을 돌리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떨어지는 순간까지 찬란했을 동백꽃.     


 제주도는 유채꽃과 수국꽃으로 유명하지만, 동백꽃으로도 유명하다. 동백꽃은 제주도의 겨울을 대표하는 꽃으로,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주로 겨울철에 개화한다. 특히, 12월부터 1월 사이에 동백꽃이 가장 아름답게 핀다. 동백꽃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떨어진 동백꽃의 운명도 가지각색이다.  동백꽃의 다양한 운명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있어 사연과 추억도 각양각색이다. 누군가에게 떨어진 꽃봉오리.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놀잇감, 누군가에게 하나의 작품, 누군가에게는 걸리적거리는 성가신 존재,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으로 다가온다.  


 빨간 동백꽃은 제주도민들에게 슬픈 역사로 남은 4.3 사건이 상징꽃으로 표현된다. 아름다운 동백꽃은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고 꽃봉오리 통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제주 4•3을 말할 때 동백꽃 떨어진 모습이 사람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동백꽃이 떨어진 바닥이 빨갛다 보니 수많은 도민들이 학살될 때 바닥이 피바다로 되었기에 4•3을 동백꽃으로 표현한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4.3 사건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빨간 동백꽃을 좋아한다. 동백꽃 자체보다 여러 그루로 어우러진 동백나무 숲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동백나무 풍경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내가 본 풍경을 오롯이 사진에 담아내는 기분도 좋지만, 풍경을 느끼는 동안 어떤 생각에 잠겨 끝없이 떠내려가는 순간도 좋다. 풍경 속 어떤 형태에 사로잡히거나 이와 비슷한 상황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계속 이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손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꽃잎이 몇 개며, 꽃잎이 어떻게 생겼으며, 꽃잎의 가장자리를 어떻게 감싸 안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향기를 맡다 코에 꽃가루가 묻기도 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그저 관념적으로만 알던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전 처음 보듯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전에 못 봤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나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금껏 얼마나 바쁘게 살며 이 세상을 관념적으로만 보아 왔는지. 지금까지 내 주위에 있는 가까운 대상들과 새롭게 관계 맺으며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세상과 교감하는 나 자신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주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유이고 일상을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슴 뛰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