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의 시대에서 창업의 시대로
현재를 보는 듯한 과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와 지중해를 지배하던 카르타고의 대결은 하나의 승자만을 허락한다. 120년간의 포에니 전쟁의 전비는 국채 발행으로 충당된다. 국채 떠안았던 부유층은 국유화된 카르타고 등지의 농지 임차권으로 보상받는다. 패잔병들은 노예가 되고 값싼 노동력이 넘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저렴한 농산물은 이탈리아 반도로 밀려 들어온다. 소규모 자영농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농지를 매도하고, 참전 보상으로 받은 임차권까지 대농장주에게 넘기다.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와 지중해 재해권을 장악한 로마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문제를 겪게 된다.
자영농을 주축으로 하는 징병제 시민병 제도는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무너져 내린다. 무적 군단은 패전을 거듭한다. 로마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안을 내놓은 그라쿠스 형제의 연설문이다.
들짐승도 날짐승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가면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로마 시민들에게는 햇볕과 공기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도 없고 땅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헤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은 그들을 독려하면서, 너희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너희의 가족과 조상의 무덤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고 속임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병사들은 조상을 모실 무덤도 없고, 조상을 제사 지낼 제단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용감하게 죽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재산과 행운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 시민은 이제 승리자이고, 세계의 패권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로마 시민들은 이제 자기 것이라고는 흙 한 줌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라쿠스 형제는 토지 임차권 매매 제한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킨다.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추가적인 자산 축적 제한 조치만으로도 부유층을 자극하게 된다. 결국 개혁은 형제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표류한다
군단장 마리우스는 농지를 잃고 도시에 흘러든 과거의 자영농을 중심으로 한 모병제를 실시한다.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는 긍지와 사회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음은 어깨를 펴게 한다. 군제 개혁은 저렴한 식량 공급 등의 복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던 사회 문제를 풀어나갈 단초를 제공하고, 로마 군단의 영광을 회복하는데 기여한다.
농사가 주요 산업이던 시절, 농지는 중산층의 필수 자산이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은퇴한 병사들에게 식민 도시를 건설할 땅을 제공하고 정착을 돕는 보상 체계를 확립한다. 전우들은 도시를 만들고 농지를 개간한다. 중산층의 증가는 팍스 로마나를 견고하게 한다.
현재를 낳은 조금 오래된 과거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철수, 닉슨 쇼크, 오일 쇼크 등으로 세계 대전 기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힘이 아닌 속도로 승부를 이끈다. 1970년대 중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철도, 자동차, 전기 혁명을 토대로 성장한 거대 기업과는 다른 길에서 기회를 잡는다. 1997년 IMF 즈음, 네이버, 다음, NC소프트 등이 세상에 선보인다.
1980년 이후의 미국은 금리 인하를 통해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증대를 꾀한다. 저금리는 금융과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생산과 소비 증대를 통한 성장뿐 아니라, 자산 가격 상승도 반영된 경제 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한다. 사회 경제적 양극단의 골은 그랜드 캐년처럼 깊고 넓다.
변곡점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거라던 미국 중앙은행은 테이퍼링, 금리 인상, 양적 긴축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풍부하던 유동성이 사라진 자산 시장에 인플레이션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문가들은 긴장하고 있다. 미국 기준, 지난 40년간 정착된 '상식'이 계속 유효할까.
네 카라 쿠 배 당토가 선두권으로 부상한다. 아이튠즈,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개화시킨다. 메타 버스는 서부 개척 시대의 이민자에게 저렴하게 불하된 황무지를 떠올리게 한다. NFT는 미키 마우스, 에디슨의 발명 특허 등의 무형 자산에 대한 권리 인정의 디지털 버전이다. 디지털 재화의 소비는 증가세다. 소비를 창출하는 생산은 건강한 성장의 근간이다. 창의력으로 부를 창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