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쓰는 편지
5. 자비와 정의의 공존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6년 동안 쓰려고 해도
확신이 들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한 장면 두 장면들이
쓰고 나면 너무 피로해
반드시 잠을 자야만 하는 경우가 많아
나의 글은 항상 침대 옆에서 작업됩니다.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글로 그리는 일.
신생아가 젖을 먹듯
간이침대 위를 뒹굴 대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이
나는 더 이상 패기만만한 젊은이가 아니게 되었고
이제 열정으로 글을 쓸 힘도 남아 있지 않은데
죽을 때까지 반복될게 불 보듯 뻔한
남의일로 바쁜 스케줄까지...
동네 성당 언니 말처럼
그때 그 만남이 분명 잘못된 만남일까요?
응??
하느님?
당신의 한 말씀으로
총체적 난국면에서 구원된 줄 알았더니
여전히 총체적 난국인 인생.
이젠 방향도 모르겠어요.
내리 6시간 퍼즐게임이나 하며 자버리려던 순간
슬며시 가까이 당겨 놓아주시는
당신의 과녁판.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의 강의를 듣고
투 텀즈 업!
주님 십자가 곁에 우도와 좌도가 필연처럼
함께했던 이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녀는 파우스티나이고
고해소를 들를 때마다
즉각 용서해줘버리시는 못말리게 자비로운
하느님임을 알기에
진홍빛 같이 붉은 죄라도 눈같이 하얀 인간 내면의 빛으로 되살려주시는 하느님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 99마리 양을 두고 떠나시는
하느님이
정의의 하느님과
도무지 공존되지 않아서
6년이나 헤매었는데...
이게 맞나 아닌가 우물쭈물 6년째 옹알이 중인 나에게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는 앎은
나의 앎이 아님을.
보여주신 수녀님의 영상.
만나적도 없는 수녀님의 이야기가
내가 쓰고 있던 소재에 그대로 이미 들어 있다는 사실에
등골에 전류가 찌르르르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성직자에게 물어볼걸!
단단하고도 따스한 삶으로.
이미 먼저 길을 내신 분들이 늘 있음을.
내가 가는 길이 새길인 줄 알고
개척자는 힘들어! 하던...
갖난쟁이는
이제 젖 좀 떼고 다시 기운 내서
걸음마를 시작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