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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Dec 16. 2022

나를 품어 준 사람들

3.  인생의 동료들

학창 시절.

어떤 모임에 가든 남의 마음을 전혀 못 읽는 나를 어째 어째 동행해준 친구들이 꼭 한 반에 한 명씩은 있었다. 대학 때는 친구가 네 명이었는데 내 인생의 기간 중에 유일하게 친구가 많았던 시기일 것이다.


여자 친구들과의 좋은 관계도 갑자기 끼어드는 남학생의 존재에 의해 순삭 되기 일쑤였다. 서로 품은 감정이 꼬일 때 남자든 여자든 아무도 택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 버려서 늘 차라리 혼자였다.


회사에서도 동료 개념 위아래 개념 선후배 개념이 없어서 누구와 깊은 연대를 맺지 못했다. 입사 동기 중  누가 봐도 성품이 우수한 오빠와 친근하고 정 많은 오빠 둘 에게만 가끔씩 내가 잘 사는지 생각나는 정도의 관계.


감시나 관리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던 나는

회사에 전 직원의 근무 상황들을 데이터베이스 하며 평가하는 그런 시스템이 들어오자마자 회사를 나가버렸다.

 

프리랜서라면..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자유와 낭만의 삶인 줄 착각하지만 삭막하게도 나는

프리랜서가 되면서 작품으로 토너먼트전을 치르는 거라 여겼고, 남다르고 격도 좋은 글을 쓰며 대진표에서  만나지는 작가들을 스트리터 파이터 게임처럼 무찌르거나 내가 무찌름을 당하거나 하며 최종 승리를 향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는 것에 피가 끓었다. 좋은 말로 열정이고 나쁜 말로 철딲써니만 마음에 가득하던 시절. 경주마처럼 총소리와 함께 돈과 시스템이 정해놓은 트랙을 달리다가


필연인지 우연인지 사회악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만났고


 내게 동료가 생겼다.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다.

00이 없는... 사람들인데

00이 없음을 감출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겨울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것.

이빨이 녹아 없어져도 그 이로 웃는 것.

누구랑 싸웠는지 얼굴이 다 상처투성인데도 소주 한잔에 마음 푸는 것.

마약 상자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뻐하며 안고 가다가 나를 보곤 갑자기 울음이 나오며 외면해 버리는 것.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우는 것...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


감히 함께는 못하지만

내 마음에 늘 동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가족들조차도 (농담 삼아) 냉혈인간이라고 하고

학생들조차도  선한 일에 몰두하는 소시오패스라고 나를 부르는데...


내가 왜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도 아직 치료받지 못한 어금니가 있고

나도 눈이 오는 날 맨발로 눈밭에서 고무줄놀이를 해서

발이 동상 걸릴뻔했던 어린 시절도 있고

누구도 때리지 못해서 우리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을 때까진 아래위로 언니 동생에게 맞고 자라던 둘째의 서러움이 있는 정도지만


내 마음의 끈이  거기서 동질감을 느끼고

아직도 거기에 닿아있다.


끝내 문명화를 거부한 야생성.

또는 강함 앞에 끝까지 패배해버린  약함.


그래도 따뜻한 이불 안에 살며 느낀 벼랑 끝 동료애에서 조차 실제 벼랑 끝은 아니었던 나는

내가 속한 시스템에도 수많은 통계관리가 들어올 거라는

정부부처의 어느 자리에서 밥맛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자기 권리

자기 땅 하나를 갖기 위해

누구누구와 법적으로 분쟁해야 하고

누구누구에게 내 개인 정보를 눈뜬장님처럼 넘겨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느슨해서 어느 정도 구렁이 담을 타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깍두기로 살 수 있던 아날로그 시절도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시대에 맞추어 끝나려나 싶다.


그때 나는 누구의 동료가 될까?

아니, 될 수 있을까?


이런 편 가르기가 싫어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영구히 소속돼도 좋다고 생각한 인간의 시스템인 속프란치스코회에서도  "너는 딱 정평창보야!"라고 하셨지만 들어가자마자 나와버렸다.


정의를 말하면서  왜 미워하는 거지?


왜 미워하냐고 물어보면

미워하는 게 아니란다.

오죽하면 이러겠냐고 한다.

그게 미워하는 거잖아요!


획! 돌아서면 끝인 나.

연대의 관계가 그렇게 깨질 때마다

결국 나는 품어지지도 품지도 못하는 인간이구나.

만 느끼는 것이다. 미움이란 것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걸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은 또 뭐 잘났다고 남에게 상처나 내고 다니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냥 받은 대로 드러내며도 산다.

아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산다.


받은 쪽 보다는 낸 쪽이 훨씬 많은 내가


품을 수 있는 건 고양이밖에 없는 내가


아직도 인간사회에 품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마음에 품고 사는 얼굴들 말고도

스쳐 지나간 많은 얼굴들이

모두 내 동료였다는 사실에


또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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