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증 돌아기 치료 일지
프롤로그
태생이 까만 사람이었다. 아주 어릴 적엔 별명이 '깜둥이'일 정도였다. 놀림을 받는 듯해 피부색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얀 친구들이 부러웠다. 뽀얀 피부를 보며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동경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하얀 피부색을 미의 기준으로 삼기까지 했다.
크면서는 잊고 살았다. 나의 피부가 더는 도드라지게 까맣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외모를 지적하거나 대놓고 평가하는 친구도 딱히 없었다. 때때로 미디어 속 연예인들을 보며 하얀 피부에 감탄한 때가 있긴 했다. 그러나 더 정확게는 그들의 색보다 잡티 없는 매끄러운 피부를 부러워했다. 까만 피부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정도는 됐다.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은 2022년 2월 아이를 낳으며 다시 발현됐다. 참 하얀 아이였다. 까만 내가 이렇게 하얀 아이를 낳는 게 정녕 가능한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이는 아빠의 피부색을 닮았다. 그게 몹시 좋았다. 편협된 미의 기준이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내 아이만큼은 나와 다르게 하얗길 바랐다.
아이의 백반증을 처음 발견한 건 2023년 3월경, 아이가 막 돌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뽀얀 아이의 얼굴을 하루에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귀하게 다루던 시기였다. 어느 날 하얀 속눈썹을 두어 개 발견했다. 왼쪽 눈이었다. 처음엔 빛에 반사돼 그렇게 보이는 줄만 알았다. 두어 가닥의 속눈썹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섯 가닥쯤으로 늘어나 있었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인들에게 말하면 모두가 "새치 나듯 몇 개 털만 그런가 보지.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를 향한, 엄마를 위한 위안이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 창에 '아기 하얀 털", '아기 하얀 속눈썹' 등의 단어를 연신 눌러댔다. 더는 '하얀 것'에 긍정적이지 않게 됐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아무래도 대학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들어야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앞서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사이 백반증이라는 증상에 대해 알게 됐다. 백반증은 색소세포의 파괴로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의 백색 반점이 생기는 병을 말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반증 환자의 약 30%가 가족력을 통해 발견된다는 점에서 유전적 요인을 크게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이의 엄마 쪽에도, 아빠 쪽에도 백반증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2023년 3월 30일, 지난한 백반증 투병이 시작됐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정상 피부를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며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아직 어린 내 아기는 병원 다니는 것을 재미 정도로 여기며, 엄마와 소풍 가듯 즐기고 있다. 그사이 아이의 얼굴과 상체엔 하얀 반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그런 아이의 피부를 볼 때면 가슴이 내려앉듯 속상하고 괴롭지만,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어 치료하고 기록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백반증의 가장 큰 후유증은 정신적 스트레스다. 환자의 대부분이 우울감을 호소한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편견으로 괴로워한다. 사회에서 자신감 있게 어울려 하길 두려워한다.
이 투병일지는 이미 사회를 겪고 있는 내 아이가 치료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쓰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