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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Sep 18. 2023

"아직 명확하게 보이지 않네요."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성북구 피부과

3월 중순경, 처음 아이의 하얀 속눈썹을 발견한 뒤로 온갖 걱정에 휩싸였다. 인터넷을 통해 내 아이의 증상이 백반증과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근심은 배가 됐다. 백반증은 피부 질환이기 때문에 피부과에서 진료를 봐야 한다. 백반증을 진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우드 등이다. 우드 등 검사는 특정 파장에 반응하는 원리다. 백반증 환자에게선 암전 후 우드 등을 의심 부위에 비췄을 때 청색 또는 백색의 형광 반응이 나타난다. 피부과 중엔 에스테틱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많다. 그 때문에 백반증을 확인하고 싶다면 우드 등을 소지한 곳을 미리 확인 후 방문해야 한다.


한참을 검색한 끝에 3월 30일 성북구에 소재한 한 피부과를 찾았다. 아이가 만 13개월을 채웠을 시기였다. 이제 막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하원에 그저 신이 났다. 평소엔 이동 시 주로 자차를 이용하지만, 해당 피부과 주변 교통 상황을 우려해 대중교통으로 움직였다. 아기 띠에 매달린 채 버스를 타고 세상 구경을 하던 아이는 도착 정거장에 다다랐을 무렵 울기 시작했다. 절대적으로 활동적인 아이를 30분 넘게 아기 띠로 묶어뒀으니 그럴 만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가까스로 목표 지점에 도착한 나는 진료 시작 전부터 진땀을 뺐다.


병원에서 대기하면서는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아직 너무 어린 아기가 신기하고 귀여워서, 진료를 볼 환자가 22년생이라는 사실이 놀라워서. 그곳에 있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게 사뭇 부담스러우면서도 안심됐다. 이미 백반증을 앓고 있는 서당 개 환자들이 아이의 피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얘는 백반증은 아닌 거 같은데?"라거나 "엄마가 예민한 스타일이구먼"이라고 했다. 정말 그들이 풍월을 읊길 바랐다.


오랜 기다린 끝에 우드 등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왼쪽 속눈썹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열심히 들여다보시던 의사는 "아직 명확하게 보이진 않네요"라고 했다. 적어도 당장은 감사했다. 이내 "진단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봐라"는 소견을 듣긴 했지만, 일단은 안심했다. 대학병원 진료는 이미 예약해 둔 상태였다. 더 정밀한 검사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차적으로 백반증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만으로도 위안받는 기분이었다. 찝찝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에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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