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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호 Oct 21. 2024

불안과 여유

방글라데시 해외봉사. 첫걸음을 디뎠던 나


 방글라데시에 온지 일주일이 훨씬 지났다. 음식도 잘 맞고 사람들도 다들 좋다. 위기는 언제나 평화를 깨기위해 찾아온다.

 3주 뒤에 내가 살 집을 구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에는 부동산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아서 To-LET이라는 간판을 보고 일일이 연락을 해야하는 시스템이 기본이다. 내가 헤드오피스에서 교육을 듣고 나면 가야할 곳은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하는 곳이라 퇴근 후에 가기에 쉽지가 않다. 다행히 다른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부동산 비슷한 분을 소개받았고 연락을 했다. 곧 알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묵묵부답이였다. 가인이형한테는 잘만 답이 오는데 말이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았다. 지금 세입자가 이번 달에 방을 떠난다는 말과 함께 약속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맞지 않아 취소가 되었다. 헤드오피스에도 오후에 잠깐 뺄 수 있냐고 물어서 시간도 뺐는데 취소라니. 가인이형도 몸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혼자 밥을 먹고 집에 혼자 있다보니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모든 게 스트레스로 왔다. 한국인 직원이 없다는 것도, 1년 살 방을 구해주지 않고 한 달 살 방을 구해주지 않은 것도, 여기서 내가 가야하는 곳이 멀다는 것도 그냥 다 미웠다. 그래서 이러면 안될 것 같아 힘들땐 언제나 그랬듯 운동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걱정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또 내일이면 새벽 다섯시 반에 아잔으로 일어날텐데. 또다시 짜증나는 게 한 개 생겨버렸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있는 늦은 밤 중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집중 하니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집 창 밖에는 슬럼가가 있다. 이 아이들의 소리도 그곳에서 나는 소리일테지. 쟤네도 이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놀고있는데 퇴근하고 한 두시간 왔다갔다 하는 게 뭐가 어려워서 주저한걸까.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살면 되는걸. 여유를 가지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유를 가지기로 하니까 하루가 다르게 보였다. 우리를 교육시켜주신다고 매일 신경써주시는 직원분들, 잠을 설쳐 피곤하니까 부르면 깨워주겠다는 가인이형, 우리 먹으라고 대추야자를 들고와주신 MR.자한 길. 좋은 마음을 먹으니 좋은 사람들만 있더라. 방을 구하는 것도 시간적 여유도 아직 3주나 있고, 퇴근 후에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혼자 외출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멀티탭을 사러 간 홀세일 마트의 캐셔와 대화도 많이 해보고(캐셔보고 한국에서 왔다 하니까 한국 사람들은 다 친절하다고 했다.) 식당에서 밥먹고 무알콜 모히또를 시켜 책을 읽는 평화를 누려보기도 했다. 왜 나는 눈앞의 행복을 먼 불안때문에 놓치고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당장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놓치고 있었는지 부끄러워졌다.


 돌아오는 길의 공기는 상쾌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곳이지만 그 안의 나는 이미 적응하고 밤공기를 상쾌하다고 느꼈다. 세상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성장할 만큼의 나이는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는 또 한번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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