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최대한 늦게 졸업할 거야.
스무 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자주 말하던 말이다.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처럼 졸업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입학할 때의 내 마음을 되살려보았다. 그때는 배가 불렀는지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대학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이니까 할 수 있는 미친 생각이었다. 지금은 내가 졸업한 이 학교가 제일 마음에 든다.
입학 전 학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학의 뜻을 이뤄야 했다.
내가 생각한 대학은 '마지막 자유'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난 더 이상 자유의 몸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놀았다. 공부는 하면서 놀았어야 했는데 그냥 놀았다. 시험기간이 되면 '나 공부 안 했어~'하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내가 공부를 안 했다고 하면 '너는 좀 해라 제발'하는 반응이 많았다(내 주변에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난 그냥 놀았다. 학기 학점이 2.22여서 둘둘치킨이라는 별명도 받아봤고, 종강하고 본가에 가면 하던 말은 '엄마, 공부 말고 다른 거로 성공하는 걸 보여줄게.'였다. 누가 들으면 반응조차 안 해줄 멍청한 얘기였다.
성적은 대학에서 얻지 못했지만 난 많은 경험을 얻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직접 경험해 봐야 배움이 생겨서 그런지, 집중력이 부족해서인지,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제일 재밌었다. 연애, 해외봉사, 학생회 출마, 서울에서 고시원살이.. 등등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지만 나한텐 너무나 귀한 경험을 많이 했다. 평생 살면서 책 한번 읽지 않던 내 취미가 독서가 되고, 운동 한번 안 하던 내 삶에 러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얻은 내 삶이다.
내가 성장한 것도 좋지만, 제일 좋은 것은 여러 사람을 만나던 경험이 제일 좋다. 내 주변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한번 보고 안 볼 사이라고 막 대하는 것보다 한번 보고 못 볼 사이니까 더 잘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살면서 공부를 잘해본 적도, 사업을 잘해본 적도, 뭐 하나 잘한다는 게 없다 생각했는데, 사람 만나고 대하는 걸 제일 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제일 재미있나 보다.
몇 년의 대학생활을 하나의 글로 줄이려니까 어렵다. 그래도 줄이고 줄이고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자면
누구보다 재미있고 행복하게 대학생활 한 사람
웬만하면 나를 아는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제일 재밌게 산다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이었고, 그 재미를 나눠주기 위해 난 항상 웃음을 주려 노력했다. 대학생활을 이 이상으로 하라면 나는 할 자신이 없다. 내 학교, 내 사람, 내 모든 게 좋았다.
졸업이 자유의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교가 나를 품기에는 너무 좁다. 그래서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나는 학교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아야겠다.
- 졸업을 앞두었던, 세상으로의 첫걸음. 2022년 겨울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