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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Aug 18. 2021

호캉스에 만년필이 필요한 이유 #2

호텔 메모지에 그린 홍콩


가져간 메모지를 다 썼거나 수첩 챙기는 것을 잊었을 때 호텔 메모지는 무척 요긴하다. 

대부분 메모지가 전화기 옆에 비치된 걸 보면 통화하다 필요한 걸 끼적이라는 뜻일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보이는 족족 여행가방에 넣어두고 글감을 기록하거나 보이는 풍경을 그리는데 쓴다. 

호텔 메모지는 떨어질 걱정도 없다. 숙소로 돌아오면 메모지는 첫날처럼 채워져 있으니까.

이쯤 되면 호텔이 나의 여행을 응원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저 그림을 그렸던 날 홍콩은 상당히 맑았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부리고 점심으로 딤섬을 먹으러 갔다. 딤섬은 한자어로 '점심'이니까 점심으로 점심을 먹은 셈이다.

찾아간 식당 딤섬은 맛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훌륭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딤섬이 모두 가짜 만두로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마른 목을 축이려 홍콩 에일맥주까지 곁들이니 홍콩에 오길 잘했다는 기분이 번져왔다.

평소 음식에 에일은 곁들이지 않는다는 분명한 기호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좋은 일을 하는 것도 행복이지만 하는 일이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을.

아, 지금처럼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인생을 갖다 대며 인생론을 펼치는 자들을 경멸해 왔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이 그런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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