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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ricot 프로젝트 Dec 26. 2021

여행을 통해 보는 서비스 디자인

올해 12월, 다니던 곳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터를 옮겼다. 퇴사와 입사 사이에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 주어졌다. 무엇을 하지? 하반기 내내 시끌시끌했던 머리에 잠깐이나마 바닷바람을 쐬워주기 위해 제주 여행을 선택했다.


전 직장에 대한 고민을 훌훌 털어버린 마음 때문인지, 작은 캐리어 가방 하나를 끌고 제주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가듯이 편안했다. 예약부터 일정 체크, 비행기 탑승까지 수많은 모바일 앱과 예약 서비스의 도움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서귀포에 도착했다. 이튿날 햇빛을 쬐면서 올레길을 따라 걸으니, 이상하게도 전 직장에서 서비스 기획을 하며 고민했던 부분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편했던 점과 좋았던 점, 기억에 남는 점들은 결국 어느 현명한 서비스 기획자가 좋은 서비스 디자인을 하기 위해 고민했을 부분과 닮아 있는지를 실감했다. '여정형 서비스', '유저 저니', '사용자 여정 지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여행'이라는 말은 UX의 언어에 깊게 녹아 있다. 출발점부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다. 고민과 검증 끝에 나온 좋은 서비스 디자인의 여정을 따라 여행자는 불편 없이, 매끄럽게 목적지까지 도달하고, 그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공유하며 더 많은 여행자들을 여행지로 불러 모으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를 식히는 여행보다도 영감을 얻는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된 것들을 노트에 하나씩 적어가며 올레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첫출발 - 온보딩

도착시간과 짐의 크기, 복장은 모두 다르더라도 공항에 있는 여행객들의 주된 목표는 한 가지로 정해져 있다. 목적지까지 최대한 빠르게, 편안하게 도착하는 것! 온보딩이란 본래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뜻의 단어이지만 점차 회사의 HR측면에서 확대해 사용하고, 이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앱을 접한 유저들이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익숙하게 사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처음 앱을 설치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 유저는 공항에 처음 발을 들인 여행객과도 같다. 유저(여행자)의 필요와 감정, 숙련도를 고려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탑승과 체크인 과정의 어디까지 왔는지, 중간에 나갔다 들어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느낀 여정의 첫인상은 여행 전반의 느낌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핸드폰 앱에서 미리 제공된 안내에 따라 사전 체크인을 진행하고, 바닥에 붙은 화살표를 따라 보안게이트까지 이동하고, 행동을 안내하는 작은 화면을 참고하며 지문인식까지 완료하자 띵동- 하는 명쾌한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열렸다.


Point
-  첫 사용 유저를 위해 화면 내에서 튜토리얼과 가이드를 제공하고 주요 기능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 프로세스의 분기점마다 성취와 성공 등을 안내하는 포인트를 주어 유저들이 온보딩 과정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느끼도록 한다.
- 간편한 가입과 로그인 방식을 제안하고, 직접 입력해야 하는 정보를 최소화한다.

- 전하려는 톤 앤 매너와 보이스를 반영해 서비스의 첫인상을 일관되게 느끼도록 한다.




유저 플로우에서의 막힘 개선

뚜벅이인 나에게 그동안 모든 여행의 가장 첫 번째 일정은 항상 짐가방을 숙소까지 가져다 두는 것이었다.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호텔까지 도착해 방에 캐리어를 두고 나면 소중한 첫째 날 일정은 이미 반쯤 지나가 버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가방을 이동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전날 미리 짐 픽업 장소와 전달 장소를 접수하고, 여행 당일날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 없는 맨몸으로 훌훌 첫날 일정을 소화하러 떠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운반 수수료를 내고 사용하는 서비스였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관광하러 가기 전 짐을 호텔에 직접 두고 오는 일'의 수고를 덜어 주는 비용으로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픽업 서비스는 가방을 빠르고 안전하게 숙소로 옮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중 제주도 곳곳에서 '여행 인증샷'을 찍어 함께 발송해 주었다. 내 캐리어가 야자나무 앞에 놓인 모습과 돌하르방 옆에 있는 모습, 그리고 목적지인 호텔 로비에 놓인 사진을 함께 받아보자 마음이 놓이는 건 물론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짐은 체크인 전까지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기존의 불편을, 크지 않은 이동 수수료를 지불해 해소하는 기회요소로 활용한 점과 작은 디테일로 오래 기억하게 될 경험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단골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우리 주변에서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불편을 개선해볼 수 있는 이런 기회요소들은 분명히 많이 존재할 것이다.


Point

- 유저 저니를 저해하는 불편요소가 무엇인지, 제공하고자 하는 주된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확인한다.

- 유저가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 사용하는 기기와 진행과정에서 막혔을 시 서비스/주변과 소통하는 방식에 집중해 불편요소 개선에 활용한다.

- 통계 데이터와 리뷰, 그리고 가능하다면 리얼 보이스를 수집해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재된 니즈를 파악한다.



유저조차 간과한 니즈를 고려하는 디테일

제주 첫째 날에는 항구에서 출발해 올레길 7코스를 따라 걸었다. 길은 바다를 따라 나 있다가도 대로변이나 인가가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갈림길이 등장하기도 했다. 비교적 파악하기 쉬운 길에는 리본으로, 갈림길에서는 나무로 된 화살표가 세워져 주황색과 하늘색으로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눈에도 쉽게 들어오고, 매일 길을 걷는 도민들에게도 불편하지 않은 노티피케이션이었다.

긴 코스의 절반쯤 걸어 바다를 향해 트인 뷰가 유명한 카페에 도착하자 카페 곳곳에 두툼한 충전기 다발이 놓여 있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 c단자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충전 서비스. 순간 일반적으로 카페에 부탁하면 제공하는 충전 서비스와는 결이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씩 핸드폰 지도를 보며 걸어야 하는 올레길 코스의 정중앙에 위치한 쉼터에 와서, 배터리가 부족하다면 그만큼 마음도 불안하고, 경치도 잘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 충전까지 할 수 있다면 카페에서 더 오래 머무르고 싶고 음식도 더 많이 시키고, 사진도 더 많이 찍고(!) 방문 후기를 다양한 플랫폼에 더 많이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충전을 부탁하는 요청이 먼저였을지, 방문한 손님들을 관찰하던 주인 분의 지혜가 먼저였을지는 모르나 적재적소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Point

- 유저들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표출된 니즈 외에도 내재된 니즈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 과업 수행의 성패만큼이나 수행과정의 경험에서 오는 감정적인 니즈도 고려한다.

 


효율적인 유지, 보수 그리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디자인

서비스는 영원불변하지 않다. 일정 기간마다 리뉴얼을 거치고, 변하는 환경에 맞춰 업데이트와 유지보수를 해주어야 한다. 좋은 서비스 디자인은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노동이나 비용, 그리고 익숙했던 서비스의 변경으로 생길 수 있는 불편을 최소화시켜주는 방향으로의 고민을 선행한다. 여행에서 계속 따라 걷던 올레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로 보수로 인한 임시우회를 위해 코스를 바꾸기도 하고, 리본과 푯말이 낡으면 새것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정기적인 유지 보수를 고려한 디자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올레길 코스를 마킹하는 수천 개의 주황색과 하늘색 리본은 별다른 장비 없이도 언제든 쉽게 풀어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고, 모두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되어 폐기 후에도 제주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개발되었다고 한다. '필요한 곳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한다'는 룰을 지키며 세워진 지주형 푯말 또한 바다에 쓸려온 판자와 목재를 활용해 제작한다고 한다. 

서비스는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들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걷다 보니 여행자센터 앞에서 작은 여권 모양 수첩에 '제주올레 스탬프'를 찍는 분들을 볼 수 있었다. 일반 여권과 비슷한 디자인에, 속지에는 올레길 코스별 지도와 완주 스탬프를 찍는 곳이 인쇄되어 있다. 긴 일정을 잡고 올레길 여러 개를 완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동기부여를 줌과 동시에, 패스포트 할인업체와 제휴해 식사와 교통비 등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서비스, 방문자들과 도민을 연결하는 서비스, 상생하는 서비스의 면을 모두 갖춘 현명한 기획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Point

- 초기 설계 시에 서비스의 장기적인 유지, 보수를 고려한다.

-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고려한다.

- 공동체와 시너지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만들어간다.



참고한 글:

http://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6/2574?call=list&c=6&p=2

https://medium.com/on-products/a-practical-guide-to-user-needs-89a1e0c03f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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