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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결 Feb 18. 2024

나의 봄은

 길었던 겨울에 비해 봄은 짧다는 걸 아는지 꽃놀이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 풍경을 보며 여유를 가지기보다는 사진을 서로 찍어주느라 더 바빠 보인다. 긴 편입공부를 마치고 첫 출사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걸 노트에만 적어놓곤 간직만 하다 실제로 할 수 있게 되니 심장이 두근대 미칠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대학교를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진 동아리를 들어가기였을 것이다. 봄바람이라도 아직 찼던 그때 학생회관 앞 동아리 부스로 무작정 가 입부신청했던 발걸음이 아직도 선명하다.

봄이 오면 옷장을 열어 가벼운 옷차림을 한다. 설레는 음악에 들뜨는 마음은 계절 탓일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일까 모른 채 한 해는 시작됐고 남들이 그러하듯 벚꽃 축제를 즐기러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내 카메라 렌즈는 그냥 무엇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냥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특별해 보이거나 프레임에 담았을 때 이야기가 새어 나올 것 같으면 일단 찍고 본다. 어디든 찾으면 예쁜 구석이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지 늘 이런 식이다. 난 나의 이런 정 많은 사진들이 갤러리를 채워나갈 때 마음이 가득 차는 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름일까 그냥 파편일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주어진 몫을 어찌 해내는지 각자의 책임이다. 물 위에 비친 벚꽃나무의 그림자는 진짜가 아니지만, 꽃잎이 떨어져 닿을 때면 슬퍼진다. 감정도 가짜처럼 느껴지다가도 한밤중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 울음이 터져 눈이 붓도록 울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비치는 표상이라 생각했던 게 사실은 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이었단 걸 깨닫게 된다.

저 너머에는 빛이 있는데 다가가지 못하는 건 아마 내게 주어진 행복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빛 받아 빛나는 게 내가 아닌 저것들이라 생각하는 묘한 거리감을 늘 느낀다. 봄빛이 비치기 시작해 여름에 만개할 때도 늘 그래왔다. 해가 살을 에는 듯한 태양열을 몸에 쬐일 때야 비로소 그 안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따스한 봄볕정도로는 행복 안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에 그렇다. 그래서일까 습관처럼 봄엔 아련해지고 찬란해 애는 듯한 여름을 기다린다.

다정한 두 잔이 어깨를 기대고 기다리는 건 뭘까

사진을 찍으려 연인이 마시던 잔을 내려둔 걸 발견했다. 살짝의 부러움과 흐뭇함을 가지고 프레임에 담아본다.

난 사랑을 기다린다. 날 발견해 줄 사랑을. 4년 동안 그런 사랑일 줄 알고 아끼고 기다렸지만 봄이 오자 떠나가버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건 분명한데 왜 나에게는 어려운 걸까 마음이 아린 적도 있지만, 이날은 나에게도 혹시 오지 않을까란 희망이 생기던 날이었다. 지난 지금은 여전히 사랑의 존재가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다. 이 믿음마저 저버리면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열어젖힌 어깨에 꽃이 자리했다. 빛은 그냥 볼 수 없지만, 나무 사이 비치는 걸 보면 눈에 담아낼 수 있다는 점. 조금은 은은해진 그 빛이 볼 수 없던 걸 보게 해 준다. 매년 오는 봄이 반가운 이유는 가벼워진 옷차림 덕분인 것도 있다. 포근했던 겨울 옷의 두터움이 무거워질 때쯤 봄은 우릴 지난해의 무게에서 해방시켜 준다. 전화박스가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남겨둔 몇 개의 것들.

 그냥 예뻐서 찍은 사진은 다시 보게 되지 않더라. 사진을 그냥 눈에 보이는 예쁜 것들을 담아내기 위해 시작했는데 막상 갤러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고자 열린 갤러리에는 생각 외의 보물들이 많이 나온다. 아득한 그땐 별로라 생각했던 평범한 사진들이 특별해 보이고 "이런 사진이 있었어?" 란 말이 이따금씩  나온다. 결국 기록은 생각을 열고 뜻밖의 행운을 마주하게 한다. 그대로 날아가는 시간과 그 속의 나를 잠시라도 붙잡아두기에 적당한 게 사진이라 난 오늘도 기록한다. 순간의 느낌을 가장 빠르게 잡아두기 좋은 탓도 있다. 인스타그램이란 소셜 미디어가 성공을 거둔 것도 순간에 집중했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성공한 면도 있다.

 나는 아직도 고민한다. 나의 순간은 사진으로 남길 만큼, 필름 한 장의 값어치 이상을 할 만큼 의미가 있을까. 돈이 필요한 게 취미라는 활동의 특징이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만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망설임 없이 셔터를 누르고 결과물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걸 보면 나에게 있어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문스러운 게 좋아한다는 확신이 "이것밖에 없어"라는 집착으로 바뀌면 어떡하지다. 과거엔 한 가지에 꽂혀서 푹 빠지는 게 당연했던 나지만 적은 나이에도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정을 할 시기에 허튼짓 하는 게 아닌가 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느낀 강렬함이 현실의 벽 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걸 알게 됐기에 좋아하는 걸 사랑하기를 망설이는 나날들이 많아졌다.


기억은 단편이어라. 힘든 일을 겪고 난 후로는 어제의 일도 흐릿한 사람이 되었다. 실은 감당하기 힘들어 스스로 매일 밤 기억의 테이프를 훔쳐 달아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치밀하게 흔적을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아침에 영문 모른 채 깨어났겠지. 어느 날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할 말이 사라졌다. 그동안의 일상에 대한 가벼운 말조차도 흐릿한 기억력에 물먹은 쉰내 나는 빨래처럼 무겁고 불쾌해졌다.

그래서 이리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나 보다. 내가 느낀 건 금방 사라질 테니. 머릿속을 헤쳐 집어보아도 오로지 기록해야지 하는 생각뿐이라 어찌 보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지긋한 사진과 글이란 키워드의 반복이지라도 누군가의 상념을 날것을 보는 게 드문 일이라 끝까지 읽어 내려갈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써 내려가는 오늘이다.


이사 가는 날인가 보다. 봄에 하는 이사라니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하던 거처를 옮겨 새로운 시작을 하니 봄꽃행이 퍼지고 얼어붙은 사람들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설렘. 봄은 계절 중에서 가장 요란스러운 기지개를 켠다. 봉오리 맺히고 개화하는 과정까지도 마음을 기울이는 시선을 끌게 하고 핀 후에도 향기로 계절에 취하게 한다. 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는 이가 흥얼거리게 하는 봄의 정취. 그 한가운데서 하는 새로운 시작은 축복받은 듯하다.

 더불어 겨울을 견디고 봄까지 피어나기까지의 노고가 대견하듯 이사를 준비하고 결심해 실행하기까지 이름 모를 누군가의 노고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게 되는 봄날이었다. 겨울의 고요한 시련 속에서 웅크리던 새싹이 햇살에 바싹 고개를 내밀었을 때 꽉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봄날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연속일 수도 있다. 주말이라, 곧 떨어질 벚꽃을 핑계로 삼삼오오 모여 꽃구경을 가겠지만, 눈부신 햇살 아래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꽃에 비쳐 빛나는 해에 매료되어 사진기를 꺼내 들었지만, 프레임에 걸린 건 박스 정리를 하시는 어르신이셨다. 봄의 정취를 느낄 여유도 없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볼 여유도 없이 그저 할 일을 해내고 계셨다.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아름다운 꽃잎이 흩날리지만 봄은 사실 겨울을 난 꽃들의 치열함이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겨울 동안 웅크렸던 몸을 깨워 일을 해야 한 해의 수확을 얻어낼 수 있는 역동의 계절이었다.

 멋진 봄날이란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꽃들이 웃음 터트리는 계절이었다. 긴 겨울의 입시 끝에 봄이 터트리는 눈부신 웃음의 기쁨을 맛보며 달콤한 산책을 했다. 한 문장 안에 담기도 터질 것 같은 벅찬 감정이 봄이란 계절과 함께 절묘하게 찾아와 시렸던 지나날의 설움이 잊혀 버렸다. 수많은 봄날이 있었지만, 어딘가에 속한 기분으로는 처음이었다. 나도 수다스러운 꽃들의 속삭임과 사람들의 사랑말들 속에서 나의 늦봄을 만끽했다. 처음 맛본 저 너머의 봄빛은 새삼 따스히 날 안아줬다.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리 꽃들이 향기로 코를 간질이며 봄인사를 나눠도 나의 마음은 메마른 겨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뚱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느리지만 마침내 찾아온 봄을 발 벗고 맞이하며 산책을 나섰다. 늘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담소 나누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나이지만 이번에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겨운 말들을 나누는 봄빛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과 지나날의 설움이 잎들 사이 향기로 흩어져 몸을 감싸 안는다. 영원할 것 같던 고독의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봄날을 더욱 시리도록 따듯하게 만든 게 아닐까.

화려한 봄의 모습 뒤엔 떨어지는 꽃잎들이 있다. 우리에게 설렘을 줬던 꽃비는 마르지 않는 빗물이 되어 땅을 뒹군다. 여린 잎들이라 금세 닳아지고 찢어지지만 새살이 돋듯 자라나는 여름잎들을 기다린다. 봄의 뒷면이지만 밤이 되면 밤하늘에 별이 박힌 듯 떨어진 꽃잎들이 빛난다. 가로등 빛에도 빛나는 그들의 수많은 눈물들이 여름비에 쓸려 땅 속에 깃들어 안식하기를 기도해 본다. 

꽃들을 타고 내리는 햇비를 담았다. 눈부신 그 빛에 눈이 멀도록 한참을 쳐다보고는 두고 가는 게 아쉬워 사진을 찍었다. 모든 순간이 애틋했지만 이 날따라 사라질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에 아린 속을 꾹 누르는 마음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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