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로 꾹꾹 눌러 적은 글씨엔 고민의 시간이 담겼다. 지우고 쓰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게 샤프와 지우개가 가진 낭만이다. 반복되는 수정에 종이는 헐고 힘이 빠져 낡지만, 그 안에 지우개가 제 몸을 갈면 남긴 따듯함이 있다. 틀리면 지우면 된다. 물론 새 종이처럼 깔끔해지지는 않지만 몇 번의 수정 끝의 성공의 흔적이 담겨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글을 한번 쓰면 뒤로 가지 않고 쭉 써 내려갔다. 수정 없이 완성하는 걸 한 때 자랑으로 여겼던 때도 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난 오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글을 신중하게 써 내려간다. 막힘없이 써 내려갔을 때는 나의 생각을 맘껏 펼치는 게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내 생각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문득 손 편지를 쓰다가 든 생각이지만 꾹꾹 눌러 담은 마음만큼 과거의 성찰로부터 내가 얻은 깨달음도 함께 나누고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 내려간다.
과거의 실낱 한올을 잡고는 신나 이야기가 잠깐 샜다. 생각이라는 게 흐름이다. 나름의 논리로 글을 쓰는 듯해 보이지만, 실은 내가 가진 경험과 얕은 지식의 나열이다. 얽히고설킨 기억을 헤집어 나의 언어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말들을 읽고 누군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되묻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는 복잡한 머리를 엉클러 트는 마음으로 끙끙대다가 비슷한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하며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처럼 나는 나의 마음의 기록을 남겨두곤 누군가 다친 날개를 여기서나마 부끄럼 없이 펼쳐 온전히 쉬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