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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Oct 31. 2022

헤어졌다

의식의 흐름대로 배설하는 연애 일기

목요일에 상담을 가는 버스 안에서 절대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을 놓았다. 놓았다기보단 놓아졌다는 표현에 더 가깝다. 앞으로는 그를 사랑하지 않겠다. 그와의 미래를 그리지 않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상담실을 나오자마자 그가 그만하자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그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생일파티에 가야 했다. 뒤늦게 잡은 내 생일 파티였다. 친구들을 만나 침착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를 만나야 해서 와인은 마시지 않았다. 선물 받은 케이크를 들고 그를 기다렸다. 


우리는 차 안에서 헤어졌다. 그는 머리가 아팠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는 내게 상처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가 그것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아팠다. 


마음이 더 이상 동하지 않는 건 그의 탓이 아니다. 슬프고 속상해도 그건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사람 마음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것들은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의 마음 소중한 곳에 내가 없었다는 것, 그에게 내가 필요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이 남았는데 헤어진다며 문제 되지 않는 그의 문제를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그때의 그는 너무 얄팍해서 깊고 깊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 말을 믿고자 했다. 정말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는 분명히 좋은 사람인데 헤어질 때는 잔인한 역할을 했다. 그에게 나는 처리하기가 난감한 짐짝 같았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그는 관계에 흥미가 떨어지자 마음은 없이 껍데기만 둔 채로 연인 역할을 흉내 냈다. 


헤어지자고 한 말에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동안 만나면서 그의 눈빛, 앉아있는 자세, 스쳐가던 한마디에서

나쁜 말 하나 없이 그저 그의 몸이 거짓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매 순간 거절당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만나면서 내가 아팠던 것처럼 그는 다른 이유로 똑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부담에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내가 마음 쓴 만큼 그도 마음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정말 후련했을 것이다. 스스로 마주하기 민망할 만큼 어느 때보다 가볍게 차를 몰고 가서 다행이다 안도하며 잠에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다. 모멸감을 느낀다.


헤어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헤어진 다음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이 태그 된 사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붙여 공유했다. 그때부터 애써 애써 감싸 두었던 몸에 균열이 생기고 작은 불이 붙었다. 도화선을 타고 점점 올라갔다. 그 위에 무엇이 폭발할지 알 수 없었다. 




금요일에 눈을 뜰 때 숙취에 시달렸다. 술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숨을 내쉴 때마다 화끈거렸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알코올 없는 숙취는 계속되었다. 모멸감이었다. 그와의 시간들이 도돌이표처럼 계속 재생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이야기가 쌓이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우리가 연애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냥 잠깐 논 것뿐이지 않을까. 진심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잘해보자던 그의 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 사이에는 그 전보다 못한 것이 남았다. 


얼굴 가죽이 분해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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