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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Sep 10. 2022

보내려고 쓰는 글 (2)

준에게

발인 예배에 늦지 않고 겨우 도착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이른 새벽녘의 어둠처럼 침울했고 

찬송곡을 부르던 목소리들은 금세 흐느낌으로 변했다. 

너는 예정된 몫을 다하고 떠난 것이고 남겨진 가족들은 이제 남은 몫을 다 해야 한다. 

목사님은 ‘감당 가능한 고난’을 강조했다. 신도들은 네 가족을 성심껏 챙길 것이다.


네 오빠는 네가 남기고 간 말을 이행하려 노력했다.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우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와서 네 얘기를 하며 우리와 함께 잔을 기울였다.


다음날 우연히 네 오빠가 처음 너를 발견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네 오빠가 걱정됐다. 까치머리를 하고 돌아다니셨던 네 아버지도. 네 어머니도. 모두가 돌아가고 나서 네가 없는 식탁에서 서로를 마주할 세 사람을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네가 좀 시끄러웠어야지. 네가 좀 치대는 애였어야지.


-

너는 언제부터 끙끙거리면서 살아왔을까

아주 어릴 적부터 서서히 너를 죽여온 것들을 상상하다 보면 

네가 버텨온 수많은 밤들이 끔찍하다 네가 너무 안쓰럽다.


-

애써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 무엇도 하려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살아서 숨 쉰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백배는 행복할 거다 

너는 우리 곁에 있을 거다


준아. 마음 편하길 바라.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는 좋은 곳에 갈 거야.

네가 말한 것처럼 너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우리는 그걸 믿어.


아프면서 더 단단해지거나 추해 지거나 어쩌면 둘 다이거나

그러면서 나이를 먹고 도중에 기쁜 일도 생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꾸만 변명을 하게 되네.


네가 후회하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바늘이라도 꽂고 나면

죄책감이 느껴져서

잘 살기 싫다


비참하고

한없이 수치스럽고

초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길가에 나앉아 

버림받고 쭈그러든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고

모두가 무시하고 동정하고 욕하고 관심도 없는 껍데기가 되고 싶다.


-

일상을 회복하기 싫다

그냥 한없이 망가지고 싶다 

그러다가 잘 다스리며 살아온 사람을 보면 

그에게서 나는 빛을 보게 되겠지


자괴감을 느끼고 싶다

마음 깊이깊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마비될 정도로

자괴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푹 절여져서

나를 망가뜨리면서

죽기 전까지 몰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때 후회하고 싶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머리와 가슴 깨에 소화되지 않은 감정과 사건들이 뭉쳐있다.

봐주지 않으면 잡히지 않을 곳으로 사라져 언젠가 내 발목을 잡고야 말 것 같다.



네가 부러웠던 건

병 때문이다


음울해지는 틈을 타서 숨어 들어온 것이

네가 성공한 죽음을 오래도록 바라 왔기 때문에


다만 너처럼 고집스럽지도 과감하지도 못해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다. 그뿐이다.


-

네가 가서 누군가는 잠시 또는 오랫동안 흔들릴 것이다.


-

버겁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덜 힘든 사람이

조금 더 힘든 사람을 안아주고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조용히 눈을 맞추고

손바닥만 한 온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네가 가르쳐주었다.


두 발로 온전히 서있기 전까지는

넘어진 동료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서로를 부여잡다간 더 아래로 파고들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네가 가고 나니까

말 한마디의 무게쯤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였을지도

진심을 담은 참견의 부피쯤은

곱하기가 아니라 나누기였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남는다.


어쨌거나 너는

기다리지 않았다.

네게 한 번도 내밀어보지 않은 손이

갈 곳 없이 헤맬 뿐이다.

 


준아 오늘처럼 잠 못 드는 밤에는 네가 와줬으면 좋겠어. 네가 내 팔을 베고 잤으면 좋겠어.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네 냄새를 맡고 싶어. 숱 많은 네 머리칼에 볼 간지러워하며 잠들고 싶어. 너한텐 분명 세련된 향이 나겠지. 머리 안 감았어도 괜찮으니까 오늘 내 품은 너를 위해 열어둘게. 옆으로 누워서 네 자리를 만들게. 와서 누워있다가 가. 잠들어 뒤척이다가 정말 네 몸이 닿으면 아무렇지 않게 안고 잘게. 자연스럽게. 뭔 말인지 알지.

혹 안 자고 밤새 불편하다고 쫑알거려도 그러려니 할게. 네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준아.


준아. 너 정말 여러 사람 괴롭히고 있는 거 알지.

너 만나면 세게 한대 치고 볼 거라는 사람 이미 줄 섰다. 그리고 나도 그중에 하나야.

매일 네 욕하는 거 알고 있니. 미안해. 근데 입에서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가는데 그걸 막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미안해. 준아 미안하다. 


-

사랑으로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해야 할 것 같아.

그 누군가를 이해하는 시점이 오면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미워하고 또 미워하고

그 힘으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어때. 언젠가 써먹어볼 만하지 않니.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지치고 무신경한 사람들 틈에서 

볼을 타고 내려온 눈물이 턱 아래에서 합쳐져 마스크 위로 떨어졌다.


카페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

눈물이 손목을 타고 내려와 팔꿈치까지 가로지르는 선을 그었다.


그게 전부였다.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찔끔거렸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만 소리를 내었다.


집에서는 얼굴이 구겨졌다. 너를 떠올리며 혼자 있는 공간에서 우는 것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졌다. 


-

준아 나는 아직 다 울지 못했다. 

세상이 찢어지고 목이 찢겨나갈 만큼 세게 울고 싶었던 이 답답함은

너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서 해소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너를 죽인 것은 너의 병이다

그 병을 만든 너의 욕심과 착각이고

그리고 그것을 만든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진 크고 작은 사회다


네가 불공정한 것들과 싸웠듯이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할 거야.

그게 남은 우리의 숙제다.


널 생각하는 시간이 벌써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너를 보낼 거야.


준아. 그동안 너무 애썼지. 정말 애 많이 썼어. 고생이 참 많았다. 너 할 만 큼 다했어.

그러니까 마음 편히 쉬어. 언니들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겠다.

우리 다시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을 거야. 

그렇게 좀 더 친해지자.


안녕.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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