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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Sep 08. 2022

보내려고 쓰는 글 (1)

준에게

준아

세상 모든 것을 찢어버릴 정도로 세게

골이 울리고 목이 찢겨나가도록 울고 싶어

네 소식을 통보받은 아침에는 네 사진과 글을 하나하나 곱씹다가 알바를 하러 갔어

허무하더라. 매 순간을 애써 꽉꽉 채워서 사는 애가 남은 시간을 버리고 갔다는 게


이제 너는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단톡방에 올라오던 너의 엉뚱하고 과감하고 편안하고 날카로웠던 말풍선도

과거에만 있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다




네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깊이 공감해왔다.

우리는 말보다 만남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연대해왔다.

너는 언제나 더 앞서서 말하고 행동하고 보여줬다.

나는 네가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언젠가 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나 같은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네가 내 속을 몰라서 그래. 나는 네가 부럽다 이 자식아.

그랬다


나도 네 속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준아

나는 네가 다시 일어날줄 알았어

가끔 네가 올린 글들을 읽으면서

네가 아파도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중이라고 짐작했어

내가 그렇듯이 너도,

우리가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어.


네 걱정을 하기엔

네 주위엔 이미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너는 나보다 훨씬 잘 해내고 있다고.


학교 다닐 때도 너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준비된 사람이었지

내가 널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가끔 너에게서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꼈는지

그래서 너에게 더 다가갈 수도 없었고 더 좋아할 수도 없었다는 것을 아는지.

네가 받는 사랑의 반만이라도 내가 가졌다면 난 스스로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때 내 눈에 넌 가진 게 너무 많았다.

가족들한테 선배들한테 후배들한테 동기들한테 지인들한테 관계자들한테

네가 받는 사랑과 네가 주는 사랑 모든 게 다 부러웠다.

너의 열정과 생기는 나를 기죽게 했다.



눈물이 안 나더라.

네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섰는데 그냥 합성된 이미지를 보는 것 같았어.

네 부모님께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

사람들이 시뻘게진 눈으로 밥은 먹고 왔냐고 물어봤어.



답해줄 리 없는 너에게 어쩔 수 없이 계속 묻는다



너 참 고집 세다

그냥 밀고 나갔어

네가 바랬던 딱 하나

그거 아닌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시원하게 가버렸네


나는 이제 와서 참견하고 싶어.

호되게 욕하고 가르치고 싶어.


네가 믿는 게 절대적 진실은 아니라고

네 안에 어리석은 놈이 힘이 세져서 그런 거라고


배우면 된다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네가 알던 세상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넌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움츠러들지 말고 뉘우치라고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

되돌아갈 생각 나아갈 생각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누워버리라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흘러가는 거 멍하니 보면서

네가 사람인지 돌인지 저 흰 구름인지 잠시 헷갈리다가

배가 고프면 맛있는 걸 먹고

단 것도 잊지 말고 먹고

다시 누워있다가 졸리면 잠에 들라고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끝없이 누워있으라고

그 전까진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하라고


그 많은 사랑들 어디에 쓴 거니 준아.

널 침범하지 못하게 그 사랑을 온몸에 두르고

잠시 눈과 입과 귀를 막고 포근하게 안겨있을 순 없었니

너 진짜 밉다.



둘째 날 밤

네 입관을 함께한 동기 네 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동기들은 눈물 나게 웃다가 울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한 순간을 잘라 확대하면

비극 안에도 희극의 조그만 조각들이 콕콕 붙어 있어서

울다 웃을 수밖에 없다


너를 특히 사랑했던 친구들은

네가 너무 평온하고 예뻐서 마음을 놓았다

누구는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누구는 절차를 잘 알지 못해서 엉뚱한 타이밍에 소리 내어 너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는 그런 동기들의 엉덩이를 차 버리고 싶었다.

네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너도 분명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웃음을 터뜨렸을 거야


나는 내내 무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그때서야 이게 어떤 감정인지 알겠더라.

속 시원하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덩어리.


부러움.


면목이 없었다.

나는 네 장례식에서 죽음마저 부러워하고 있었다.

코웃음이 나왔다

어이없게도 여전히 네가 부러웠다.

그렇게 끝내고 간 네가 부러웠다.


어쩜 네 존재는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부러움이다 준아.

너는 죽었는데 나는 부럽다.

이해할 수 있니.

나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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